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을 사람 Aug 04. 2021

유치원 선생님의 하루 일과

애들 집에 가면 퇴근 아니냐고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애들이랑 동화 읽고, 그림 좀 그리고,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다가 애들 가면 퇴근하는 거 아니야?"


아니다.


내 직업이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떠나서 굉장히 무례한 말이다. 기분은 몹시 나빴지만 한 직업을 얕잡아 보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설명하기 귀찮아서 '응, 아니야~'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언제 한 번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는데, 오늘 해야겠다.


지금부터 내가 주절주절 쓸 이야기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푸념에 가까운 글이지만 혹시 유치원 교사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겠다.





유치원 선생님의 하루 일과, 업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으면서도 적은데, 근무하는 유치원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 군데 유치원에서 근무해보았고 그 세 군데에서 모두 업무의 비중이 달랐다.

유아 교육 및 학급운영 + 교육계획 및 준비 + 학부모 관리 + 서류 작업이 기본인데 여기에 원장의 운영방침, 유치원의 위치, 교육 프로그램, 규모, 정교사 외 보조 인력의 유무, 교사의 교육철학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일이 추가된다.


보편적인 일일 교육 일과의 예시



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놀이의 비중이 더 커지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보편적인 하루 교육일과는 이러하다. 물론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상이하다.


아이들 하원 후의 일과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비교를 해보겠다.




1. 작은 규모의 누리과정 중심 유치원.


1-1. 작은 규모, 높은 교사대 아동비율(만 4세 / 투 담임 / 교사 2:아동 40), 부담임 없음, 종일반 교사 없음, 매일 차량 지도, 청소 인력 없음, 어린이집 같이 운영. 행사 적음.
 - 8시 30분~2시 30분 : 유아 지도, 학급 운영
 - 2시 30분~5시 30분 : 종일반 운영
 - 5시 30분~ 6시 10분: 차량 지도
 - 6시 10분~ : 청소, 학부모 케어, 다음 수업 준비(미술재료 준비, 자료 준비, 계획안 작성 등), 오늘  활동 결과물 정리 및 게시, 포트폴리오 정리, 밀린 서류 작업(안전교육 일지, 현장학습일지, 전화통화기록, 관찰일지 등), 일안 평가
 - 돌아가면서 7시 30분까지 당직.
 - 돌아가면서 6시 10분~6시 40분 차량 지도.
 - 주 1회 6시 10분~ 교사 회의.

+) 행사가 있다면 행사 준비, 아이들 작품 전시 준비, 연말에는 유아 개인 앨범 만들기

*정규 퇴근 시간은 6시 10분이었다.



1-2. 작은 규모, 높은 교사대 아동비율(만 5세 / 교사 1대:유아 34), 부담임 없음, 종일반 교사 있음, 매일 오전 차량 지도, 청소 인력 없음, 어린이집 같이 운영. 행사 적음.

 

다른 건 1-1과 같은데, 종일반(방과 후 과정반)을 돌보지 않는 대신 공문을 담당했다.


정시 퇴근은 상상도 못 했다.(이때 허리가 망가졌다.......) 나중에 아이들이 27명으로 줄어들고, 종일반 선생님께서 2시 30분부터 6시 10분까지 계속 아이들을 맡아주시고 나서야 정시에 퇴근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이곳의 경우, 학부모와의 소통이나 학급 운영에 있어서 교사의 자율성이 매우 높고, 행사가 적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유 인력이 없고, 학급이 적어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2. 연령별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규모가 큰 숲유치원


유치원 규모 큼, 행사 많음, 부담임 있어서 적절한 교사대 아동비율(교사 1:유아 22), 종일반 교사 있음, 매일 오전 회의, 청소 인력 있음(교실, 화장실 제외), 차량 지도, 정규 퇴근 시간 7시.


- 8시 20분 ~ 8시 45분: 아침 회의
- 9시~ 3시: 1번 유치원처럼 오후 3시까지는 유아들과의 활동시간이다. 숲 유치원이다 보니 실외활동의 비중이 컸다. 매일 1시간 이상 실외활동을 하였으며, 연령별로 프로젝트 활동을 병행하였기에 하루 일과가 매우 바빴다.
- 3시 ~ 4시: 주 2회 차량 지도, 주 1회 특별활동 수업 참관.
- 3시~7시: 3시 이후 방과 후 과정반 선생님이 유아 보육.
               교사 업무 시작. - 학부모 소통, 홈페이지 관리(사진 업로드), 수업 준비, 잦은 행사 준비, 서류업무, 교육계획안, 평가, 연령별 회의, 가정으로 배부되는 활동 소식지 작성, 전체 업무 분장표 담당 업무
- 정규 퇴근 시간 7시

1번 유치원에 비해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유아의 수도 적고, 부담임 교사도 있었다. (숲유치원의 경우 매일 숲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유아의 안전을 위해 부담임 교사가 있는 것이 좋다. )

표면적으로는 애들도 적은 데다가, 부담임도 있으니 굉장히 일하기 수월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숲 활동과 프로젝트 활동을 병행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하루 일과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바빴다. 게다가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은 곳으로, 매일 단체 업무를 해야 하다 보니 교사 개인일을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죽하면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아, (우리 반) 일 하고 싶다." 였을까.......


학부모 소통에도 굉장히 힘쓰는 곳이어서 아이들 하원 후 전화기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전화기 내려놓으면 단체일, 단체일이 끝나고 나서야 내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고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건물이 워낙 커야지.......)  게다가 종종 교사들이 텃밭 관리도 해야 했다. (유치원 앞에 있어서 텃밭이지 규모는 텃밭이 아닌 걸?)

거의 5개월을 연달아 야근할 때는 미치는 줄 알았다. 울면서 출근하고, 울면서 퇴근했지. 허허... 부담임 선생님들이 안 계셨다면 난 아마 송장이 되어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원장님이 교재 구입에 있어 관대하다는 큰 장점이 있어서, 다양한 자유선택활동과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교사 개인의 능력치를 쌓기에는 좋았다. 쌓이는 능력치만큼 수명이 줄어든 것 같다는 게 문제였지만.




3. 누리+놀이 활동 중심의 중간 규모 숲유치원.


행사 정말 많음, 견학 정말 많음, 만 3세 외 부담임 없음. 부담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교사대 아동비율(만 4세 / 교사 1:유아 24), 청소인력 있음, 차량 지도 안 함, 4시 30분부터 종일반 교사 있음. 정규 퇴근 시간 6시. 한 달에 2번 1시간 일찍 퇴근.


나의 마지막 유치원. 아디오스 얼리차일드후드에튜케이션! 페어웰 킨더가튼!


이곳에서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들과 생활했다. 하원은 3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시작, 5시 마지막 차량 탑승이었다. 먼저 하원 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전화 외의 모든 업무는 거의 5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교육일과는 실외활동과 신체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미술이나 요리활동에도 욕심이 많았다. (나 말고 높으신 분이......) 매일매일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부담임 선생님 없이 잦은 실외활동은 매우 힘들다.


5시부터 학부모 소통, 홈페이지 관리(사진 업로드), 수업 준비, 서류업무, 교육계획안, 평가, 전체 업무를 진행한다. 담임교사는 차량과 화장실 청소, 교실 바닥청소는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늦게까지 데리고 있는 대신 차량 지도와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의 경우 특히 학부모 소통과 홈페이지 관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5시 이후 통화와 홈페이지에 사진 업로드를 하고 나면...! 그렇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수업 준비에 조금 욕심을 부리는 날은 야근하는 날이다. 행사도 잦은 곳이어서 행사 준비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유치원 별로 대충 적어보았는데도 내용이 꽤 길어졌다. 이것은 그저 매일 반복하는 일을 조금 적어 본 것일 뿐이다. 위에 적어놓은 일이 기본 업무고 이제 여기에 이런저런 다양한 추가 업무가 있다고 보면 된다.


학기 초와 학기 말의 특수성, 학부모 상담, 생활기록부, 계절별 특성에 따른 추가 업무, 직무연수, 유치원 프로그램에 따른 정기적인 교사 연수, 교재교구 만들기, 실습생 지도, 평가인증, 감사 등등 떠오르는 것만 적어 보았지만 계속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유아와 함께 생활하는 교육일과도 단순하게 표로만 보여주고, 수업준비도 수업 준비라는 말로 끝내버렸지만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이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 당신들 모두 원더우먼이고 슈퍼맨이다. (나도)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 내 알츠하이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