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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Oct 11. 2021

아들보다 더 오래 산 교재

중3 아들 영어 과외를 하기 위한 교재를 사기 위해 인근 서점으로 갔다.


나름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함께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사실 나는 서점이 낯설다. 책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기에 서점에 갈 일이 없다. 가끔 필요한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게 전부다.


물론 만화방은 예외다. 만화방은 오락실과 함께 초중고 학창 시절을 함께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매우 친숙한 고향이다.


비록 영어 문법책이지만 실제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방문하니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왠지 나 자신이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인 듯한 착각에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그것도 아들을 대동하고 왔으니 어깨가 더 으쓱해진다.


점원에게 영어 관련 참고서 위치를 묻고, 아들에게 선심 쓰듯 말한다.


"네가 마음에 드는 것 골라봐. 그걸로 하자."


물론 아들은 딱히 특별한 생각이 없다. 대충 이책 저책 넘겨보고는 말한다.


"그냥 아빠가 골라줘. 어차피 아빠가 가르칠 거잖아."


"그럼, 아빠가 선택하는 책으로 하고, 같이 왔으니 같이 선택한 거다."


일종의 압박을 가하기 위해 아빠의 선택이 곧 아들의 선택임을 다짐받고 영어 참고서들을 스윽 훑어본다.


이제 전직 강사의 예리한 감을 믿을 때다. 과연 책의 짜임새가 있는지, 문법 용어 설명이 쉬운지, 그리고 예문은 충분한지 살펴본다.


그렇게 30여분, 나름 꼼꼼히 여러 책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딱히 맘에 드는 책이 없다.


그때, 강사 시절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참고서가 생각났다. 설명이 구어체로 되어 있어 읽기가 편한 책이었다.


구태여 돈을 들이는 대신 집에 있는 책으로 수업하기로 하고 서점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그 책을 찾아보니 2003년 발행되었다. 아들보다 세 살 형이다.

생각보다 양호한 상태의 올해 만 18세 된 교재

영어 강사를 그만둔 지 18년이 흘렀건만 그때와 비교해서 참고서 질이 특별히 나아진 게 없는 듯 해 안타까웠다.


돈이 굳었다. 책 살 돈으로 아들과 나란히 서점 앞에 있는 핫도그 집으로 향한다.


우리의 취향저격, '통모짜 핫도그'를 한입 베어 물고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역시 공부보다는 먹는 게 더 즐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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