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들 영어 과외 3주 차. 수업 전 오늘의 수업 목표를 주술처럼 되뇐다.
'동사 시제', 'to 부정사', '가정법' 등 문법 따위가 아니다.
<오늘의 수업 목표> 수업 중 언성 높이지 않기
이러한 목표를 세운 것은 물론 지난 두 번의 과외에서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수업에서 딴에는 정말 친절하게 아들에게 설명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르치는 내 입장이고 배우는 아들은 달리 생각할 수 있다.
강사 시절부터 가져온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관한 불만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문법 용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어 문법을 배우고 가르치다 보면 항상 가장 기본적으로 나오는 단어들이 있다. '구'와 '절'이다. 그 둘의 차이를 간단히 알아보자.
구: 두 단어 이상으로 구성되어 명사, 형용사, 부사 등 품사 역할 수행
절: 구와 마찬가지로 품사 역할을 수행하지만 주어와 동사 등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
이외에 각종 품사, '부정사', '관계대명사' 등도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수업이 겉돌기 십상이다.
설명을 들을 때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한 것 같지만, 10분 후면 짙뿌연 안갯속처럼 배운 내용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하루만 지나면 말끔히 잊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학창 시절 내가 그랬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중3이지만 한자어로 된 문법 용어에 대한 기본 이해가 전혀 없다. 과외 3주 차에도 구와 절을 구분하기 어렵다.
"I believe that my dad is very handsome."
사실에 입각하여 임의로 문장을 만들어 보여준다.
"밑줄 친 부분이 구야 아니면 절이야?"
"구! 아니 절인가? 아니 구! 구가 맞아."
아들은 이제 확률 반반인 '동전 던지기'처럼 찍는다. 물론 찍기의 중요한 단서는 강사의 얼굴 표정이다.
하지만 노련한 강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심지어 페이크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아들이 이번에도 틀렸다. 절이다.
to 부정사 용법은 더 헷갈린다. 명사, 형용사, 부사 등 선택지가 세 개이기 때문이다.
거듭된 아들의 눈치보기 찍기에 나의 한숨이 잦아지고 깊어진다. 결국에는 폭발하고 만다.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해?"
오늘도 기어이 언성이 높아졌다.
정적이 흐른다.
아들이 눈치를 본다.
<오늘의 수업 목표> 달성 실패
'역시 중학생 아들을 과외하기란 불가능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 이게 그리 화낼 일인가?'라고 반문한다.
아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고, 배우기 위해 과외를 받는 것인데...
"아들,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다음에는 안 그럴게."
아들에게 행여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사과한다.
그리고 다음 주의 수업 목표를 되뇐다.
<다음 주 수업 목표> 수업 중 언성 높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