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의 힘 Feb 15. 2023

"자녀 교육이 도저히 불가능한 지방"

3년 전 어느 날, 서울 강북에서 열린 회의에 다녀오는 길이다. 외부 평가위원 자격으로 한 공공기관이 발주한 사업의 제안서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오후 4시경 사업평가회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발길을 재촉한다. 갈 길이 멀다. 집이 있는 강원도 혁신도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방향이 같은 다른 평가위원과 함께 고속터미널역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그녀도 강원도 혁신도시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터라 반갑다. 대화가 술술 이어진다. 주로 혁신도시에서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자녀가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공통점을 알게 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급발진한다. 깜빡이도 켜지 않았다.       


“거기서 도저히 교육을 못 시키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다시 강남으로 왔어요.”    

  

본사가 있는 강원도 혁신도시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던 그녀는 자녀가 중3이 되던 해 강남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녀 교육. '강남'이라는 단어에는 자부심이 묻어 난다.


“교육 환경이 너무 형편없어요. 보낼만한 학원도 없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녀가 원망 섞인 속사포를 쏟아낸다. 마치, 내가 강원도 혁신도시의 교육 책임자인 것처럼.


대꾸할 새 없이 그녀의 급발진이 점점 빨라진다. 굉음이 심해지듯 그녀의 목소리도 커진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그 지역 고등학교 교장인데, 그분도 그러더라고요. 여기서는 교육시킬 환경이 못된다고.”     


한탄인지 푸념인지 마음껏 털어낸 그녀가 내 반응을 기다린다.  

    

쉽사리 반격의 실마리를 잦지 못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직장 동료들에게 들어 일찌감치 알고 있던 터다.      


대치동, 목동 등 사교육으로 유명한 곳에서 온 직원들일수록 이와 같이 생각한다. 그들 중 일부는 자녀 사교육비로 한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털어 넣기도 한다.  

     

“아, 네, 네, 네” 말꼬리가 내려간다.  

주눅이 든다.

   

하지만 이내 죽어가던 전의를 되살린다.


‘내가 누군가. 자녀 교육을 위해 지방으로의 이전을 온 가족과 함께 두 달여간 토론한 내가 아닌가!’      


‘강남에서의 교육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우쳐줘야겠다.’     


우선,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나의 논리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다.      


허허실실, ‘선 공감-후 격’의 패턴이다.     


“여건만 된다면야 강남에서 애들 교육을 시키는 것도 좋죠.”    


우선 ‘선 공감’을 베푼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정도의 온화한 표정도 필수다. 그리고는 바로 격에 들어간다. 단전에 기를 모아 힘주어 말한다.     


“하! 지! 만!”     


“아, 여기서 내려야 해요. 저 갈게요.”     


" ......"


순간 멍해진다.


떠났다. 그녀가 가버린 것이다.      

5초 전만 해도 내 코앞에서 열변을 토하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내 회심의 격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하철에서 훌쩍 내려버렸다.


당황스럽다.

 

‘저, 저기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저는 전략적 선택으로 가족과 함께 강원도 혁신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제 아이의 목표는 의약계열 진학이고 지역인재 전형을 활용한다면 수도권에서 교육시키는 것보다 더 나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딸도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나마 강원도 혁신도시에 가족과 함께 이주한 이유를 똑똑히 말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지방의 혁신도시로 이주한 이유를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 후로 난 그녀를 본 적이 없다. 이름도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화려한 ‘후 공격’ 초식을 완전히 펼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오로지 나의 ‘선 공감’만을 취한 그녀.


그녀는 아마도 나를 '공감 능력이 충만한'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기억할 듯하다.


그렇게 애써 위안 삼는다.



<관련 글> 혁신도시의 일반고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을 담았습니다.

https://brunch.co.kr/@good4u1975/104



<부녀가 함께 지방에서 의치한 가기> 바로가기

https://brunch.co.kr/magazine/goingtouni

매거진의 이전글 의치한 진학이 목표라면 조기유학은 '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