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학교에서 강사와 기간제 교사로 꽤 오랜 기간 일했다. 경력을 총합산하면 10년에 조금 못 미친다. 그중 기간제 교사로서의 경력이 가장 길다. 기간제 계약 기간은 보통 1년, 6개월, 그리고 3개월로 나뉜다.
1년짜리 계약은 그야말로 수지맞는 조건이다. 퇴직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간제 자리를 구하는 입장에서는 1년짜리 계약을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기간제 특성상 기간 선택은 차치하고 빈자리가 날 때만 일할 수 있다.
그런 자리를 아내가 찾아 계약하는 것이다. 임용고시를 두세 차례 본 적도 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기에 기간제 교사로 일한 것이다.
사실, 그런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계경제는 맞벌이하는 기간은 흑자,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적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마운 직장이지만 쉽지 않은 직장생활이다. 아내는 수시로 변하는 새로운 직장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으면 계약 종료가 다가온다.
그리고 기간제라는 자격지심 때문일까, 아내는 학교에서 항상 '을'인 것 같다고 종종 토로하곤 했다. 계약 관계상 '을'이 아닌, 직장생활에서의 '약자'임을 뜻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내는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고 수업을 병행한다. 그리고 최대한 일을 찾아서 하고, 주변 동료 교사의 일을 돕는다. 업무와 관계없는 일이 주어져도 불만 제기란 있을 수 없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계약 연장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사회 특성상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계약을 종료해도 한번 안 좋은 소문이 나면 기간제 자리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내는 제법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동시에 가장 '약자'인 기간제 생활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기간 동안 기간제라는 설움을 많이 느꼈을 터다.
그러던 2019년 어느 날. 아내가 말한다.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할래."
예전에도 그런 말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기에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아내는 힘주어 말을 이어간다.
"내 평생소원이 뭔지 알아? 정규직이 되는 거야. 정규직! 나 정규직 할래."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진짜 제대로 마음먹은 거 같다. 자리를 고쳐 앉는다.
"정규직인 당신은 내 마음 몰라. 내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그렇다. 나는 정규직이다. 현재 공공기관에 재직 중이다. 이러한 아내의 말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아내는 만삭인 채로 기간제 교사를 하며 우리 집의 가정경제를 오롯이 책임진 적이 있었다. 나는 결혼 후 불안정했던 강사생활을 그만두고 공기업 취업을 목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내는 첫째 임신 중이었고 일하면서 내 뒷바라지를 해준 것이다. 덕분에 난 18년 이상을 '정규직'으로 재직 중이다.
아내에게 말한다.
"알았어. 이젠 내가 뒷바라지할게. 한번 제대로 해봐."
2019년 어느 날, 그렇게 아내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돌입했다.
그와 동시에 나도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타이틀에 아내 외조와 중1, 고1 아이들 건사, 그리고 각종 집안일을 담당하는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더하게 된 것이다.
아내에게 진심을 다해 당부한다.
"부디, 짧고 굵게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