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의 힘 Oct 24. 2021

만 46세, 드디어 꿈을 이루다

아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지난 6월 5일, 지방교육행정직 9급 필기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치른 소감은 전년도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 낙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부터 꼭 한 달 후인 7월 5일. 필기시험 발표일이다. 아내는 합격여부 조회를 내게 맡긴다. 지난해, 한 문제 차이로 지방직에 떨어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여 아내가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쉽사리 엔터키를 누르지 못하고 길게 심호흡을 내쉰다. 마음을 가다듬고 마침내 엔터키를 누른다. 화면이 전환된다.


"필기시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하마터면 근무 시간에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 핸드폰으로 아내에게 희소식을 전한다.


"여보, 고마워." 아내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면접 준비를 해야 한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필기시험 합격날부터 아내는 면접 준비에 열심이다. 교육 관련 강의를 수강하며 예상 질의를 만들고, 스터디에 참여해 회원들과 화상으로 모의면접을 진행한다.


그렇게 아내는 7월 23일 면접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최종 결과 발표일인 8월 2일. 이번에도 아내를 대신해 합격여부를 조회한다. 필기시험 결과 때만큼이나 떨린다.


"OOO님 최종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간 고생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집안일하고, 아이들을 학원에 실어 나르는 육체적인 고생은 얼마든지 참을만하다. 정신적인 면이 문제였다.


비록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지방에 이사온지 거의 3년이 다 돼가지만 우리 부부는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해본 적이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나중에는 아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같이 살고는 있으나 마치 주말부부 하는, 아니 단순히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룸메이트 사이 정도였다.


그러기에 나는 주말이 답답했다. 그럴 때면 친한 동료를 불러내 같이 산에 가기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혼자 산책하기도 하면서 나 자신을 다잡았다. 이제는 그런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 저녁, 딸과 나는 아내를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다. 딸과 함께 꽃집에 들러 하나하나 꽃을 골라 축하의 꽃다발을 만들었다. 십수 년 만에 사는 꽃다발이다.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아내에게 십수년만에 선물한 꽃다발>

집에 돌아와서는 울음과 웃음이 교차하는 대화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아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은 괴로움과 슬픔이라는, 그리고 올해는 환희와 기쁨이라는 의미의 눈물이다.


특히, 고3인 딸의 감정이 제일 격하다. 본인과 동고동락했던 수험생 동료가 먼저 합격의 영광을 누리기에, 그리고 그간 그 동료가 들인 고생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단다.


사실, 딸과 아내는 같은 수험생으로서 아낌없이 서로를 격려하던 차였다. 아이러니하지만, 아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모녀간 사이가 더 가까워진 듯하다. 수험생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 가정은 '한 지붕 두 수험생'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고3 딸만 수험생 신분으로 남아, '한 지붕 한 수험생' 가정이 된 것이다.


부디, 제 엄마가 노력의 결실을 맺어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처럼 딸도 올해 같은 눈물을 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 꽃다발을 준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마다 들리는 흐느낌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