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잠을 자다 새벽에 잠에서 깬다. 또다시 어디에선가 흐느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비몽사몽간에 소리의 출처를 찾는다. 바로 아내다. 벌써 한 달째. 새벽마다 아내는 흐느낀다. 그리고 나는 잠을 설친다.
아내는 40대 중반이 넘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용기 있는 도전이자 일견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0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첫 시험을 봤다. 온 가족이 내 근무처를 따라 지방인 A시로 이사해 터 잡은 지 2년 만이다.
아내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 접수 전 큰 고민에 빠졌다. 세를 준 집이 있는 수도권 B시에 지원할지, 아니면 A시에 지원할지 결정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진즉에 두 아이를 A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교육환경은 수도권에 비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고, 또 무엇보다 대입 시 지역인재라는 카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내는 A시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B시가 아닌 지금 살고 있는 A시. 그 선택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시험 결과가 나왔다.
A시 합격 커트라인: 389점. 그리고 아내의 점수: 387점
2점 차이로 낙방한 것이다.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아내도 나도. 정말 한 문제가 야속했다. 아니, 야속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것보다 더 멘털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뒤늦게 B시 합격 커트라인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B시 합격 커트라인은 382.5점으로 아내의 점수는 이를 넉넉히 상회했다.
또다시 마음고생이 심해진다. 이제는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이라는 한탄과 동시에 'B시에만 지원했더라면'이라는 통한의 눈물이 더해진다.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로는 상대가 없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결과를 받아들인 아내는 며칠을 끙끙 앓고 난 후 재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독서실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아내는 괜찮아 보인다. 아내가 돌아오면 아이들은 방에서 나와 엄마를 맞는다. 그리고 온 가족이 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고2인 딸과는 공부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어준다. 처지가 비슷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이유다.
그렇게 온 가족과의 대화를 하고 난 후 아내와 나는 잠자리에 든다. 나는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하지만 아내는 고요한 밤이 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B시에만 지원했더라면'
이런 생각이 아내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눈물을 흘린다. 아내는 다음 날 출근하는 나를 위해 숨죽여 울지만 결국 나는 또 잠에서 깨고야 만다.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방법이 없다.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동원해도 아내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에게 말해준다. 고맙다고. 아이들과 내 곁에 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