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고3이 된 올해, 우리 집은 '한 지붕 두 수험생' 가정이 되었다. 대입을 앞둔 딸과, 개인적 시험을 준비하는 아내가 그 두 수험생이다. 당연히 우리 집은 수험생 위주로 돌아간다.
외식 메뉴도 수험생들이 정한다. 그뿐만 아니다. 이제 우리 집의 두 여성은 집안일에서 열외다. 덕분에 집안일은 오롯이 아들과 나, '비'수험생들의 몫이다. 다행히 아들과 나는 집안일 궁합이 잘 맞는다. 나의 유일한 약점은 요리. 이 부분을 아들이 채워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아내는 밤늦게 독서실에서 돌아와 다음날 먹을 음식을 해놓지만, 식욕이 왕성한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아들은 나와 달리 요리에 관심이 많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식은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제대로 차려 먹는다. 그뿐만 아니다. 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요리한다.
제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시도조차 못할 방식을 총동원한다. 유튜브에서 익힌 방식에 본인만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하는 식이다. 엄마가 봤다면 '등짝 스메싱'이 날아왔을 법한 요리방식이다.
<아들이 해준 다양한 요리>
본인만의 방식으로 고기를 굽고, 냉장고에서 수명을 다해가는 토르티야를 꺼내 피자로 환생시킨다. 완제품 음식도 꼭 본인만의 레시피를 추가한다. 처음 들어보는 향신료나 식재료를 가미하는 식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장은 늘 아들과 함께다.
하루는 모시조개가 물에 한가득 담겨 있길래 뭐냐고 물어보니, '해감' 중이란다. 해감,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어쨌든 아들은 정성스레 모시조개를 해감한 후 미국에서 먹어봤던 클램차우더라는 요리를 재현한다. 아들 덕에 온 가족이 외식하는 기분을 낸다.
<다양한 재료가 정성스레 들어간 아들의 클램차우더>
사실 아들의 요리는 맛있다. 싱겁게 요리하는 아내와 달리 자극적인 방식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딸도 제 동생이 해주는 요리를 더 즐긴다. 고3인 누나를 위해 요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윽박지르는 일이 잦아진다.
그럴 때면 나도 힘들게 일하는 아빠를 위해 식사를 차려야 하지 않겠냐며 압박 수위를 높인다. 아들은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요리의 고수가 되어간다.
하지만 아들의 요리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짓거리가 그것이다. 아들은 어디서 찾았는지 온갖 주방 용품을 죄다 꺼낸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설거짓거리가 싱크대와 식탁을 빼곡히 점령한다. 이제는 나의 활약이 필요하다.
우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린다. 이제 설거지 타임이다.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시작한다. 하나 둘, 산더미 같던 설거짓거리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조금씩 줄어준다.
그렇게 30여분, 그 많던 것들이 깨끗하게 모조리 정리된다. 마지막으로 싱크대에 남아 있는 물기를 제거한다. 나도 모르게 일종의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이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건조기가 열일하는 동안 진공청소기를 한 손에 들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먼지와 머리카락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걸레질을 시작한다. 설거지와 마찬가지로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바닥이 반짝반짝 해진다. 내 마음도 반짝반짝 해진다.
창고에 쌓인 재활용품을 내놓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정리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빨래개기가 남아 있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하나씩 차곡차곡 갠다. 빨래개기도 역시 드라마와 함께다.
<정돈된 빨래를 보면 왠지 마음이 뿌듯하다>
정리하기 쉬운 수건을 시작으로 부피가 큰 외출복, 그리고 마지막에 속옷을 정리한다. 이때, 가족별로 옷이 섞이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모두 정돈된 빨래를 보면 흐뭇해진다. 하지만 몸이 너무 고되다. 놀라운 점은 이 와중에 운전하여 고3 딸의 학원 등하교도 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바탕 집안일을 하고 나면 난 바로 숙면에 들어간다. 아내가 독서실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미 내 몸은 침대 위에 쓰러져 있다. 한 지붕 두 수험생의 가장으로 이렇게 난 집안일의 고수가 되어 간다. 자칭, 설거지와 빨래개기의 황금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