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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Oct 22. 2021

중3아들과의 게임전쟁 2

모두가 행복해진 '윈-윈'

아빠와 아들 둘이 앉아 진지한 대화를 한다. 주제는 게임. 아빠는 라떼시절의 게임을 설명하며 아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믿지 않는 눈치다. 그래도 신나게 당시의 경험을 아들에게 들려준다.     


아들 또한 본인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최대한 어필한다. 친구들과 사귈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이 게임이라며 아빠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중학교 입학 직전, 태어나 처음으로 이곳에 이사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친구가 필요한 상황임을 아들이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편을 갈라 친구들과 함께 팀 대 팀으로 게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서로 전략을 논의하고 역할을 나누어 공동의 목적인 적을 쓰러뜨린다는 것이.


아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눈은 총기로 밝게 빛나고, 마우스를 쥔 손은 분주하며, 양손의 손가락은 알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 모든 신체 작용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놀랍다. 보기, 듣기, 말하기, 움직이기 등 무려 네 가지다. 유튜브 게임 채널이 왜 인기 있는지 이해된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들이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있는 아들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아들은 중학교 1학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자기 절제가 가능한 게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기가 있어야 한다. 내 경우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즐겼다고 스스로 인정했기에 가능했다. 물론 20대 중반에서야 게임을 끊어 늦은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들은 제재가 없는 날에는 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게임을 즐긴다. 자기 절제가 없다. 모자가 하루 종일 함께 집에 있는 날이 문제다.


아내는 ‘참을 인’을 새기며 수시간을 인내하다 결국에는 폭발한다. 일방적인 잔소리가 폭발음처럼 이어진다. 그러면 아들은 하던 게임을 멈춰야 하다. 몇 시간 동안 전우애를 다진 아군들에게 한순간에 의리 없는 친구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황금 같은 주말,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도 아들은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예닐곱 시간 동안 게임을 하고도 불만이라니.


뭔가를 즐겼으면 기분이 전환되고 재밌게 놀았다는 뿌듯함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어야 하는데 실상은 정 반대다.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난 이런 사태의 원인을 ‘욕구불만’이라고 분석했다. 아들은 항상 부모의 눈치를 보며 게임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게임이 중단될 수 있다는 일종의 불안감이 욕구 충족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게임 후에도 미련이 남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원인이 파악되었으니 해결책은 어렵지 않다. 아들의 게임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된다. 아내가 배석한 자리에서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중2 되기 전까지 무제한으로 게임 가능

단, 밤 11시까지만

중2부터는 주말에만 게임하되 하루에 두 시간 넘지 않기


아들은 반신반의하며 제 엄마의 눈치를 본다. 물론 이미 아내를 설득해서 동의를 받아낸 상태다. 아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한다. 그 기쁨은 컴퓨터를 거실로 옮긴다는 말에 반감되지만 어쨌든 아들 입장에서는 생각지 못한 조건이다.


아내에게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아들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는 단단히 약속을 받았다. 약속한 기한 동안, 절대로 게임 때문에 잔소리하거나 화내지 않는다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이 중2가 되었다. 과연 아들은 주말에만 게임을 할까? 아니다. 중2가 되어서도 여전히 장시간 동안 게임을 즐긴다. 모자간의 전쟁도 여전히 빈번하다.


하지만 바뀐 점은 분명히 있다. 아들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종종 실패하지만, 스스로 게임시간을 조절하려애쓰며 게임을 그만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불평하는 일이 없다.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던 게임을 이젠 밤 11시 이전에 끝마친다.


난 이런 아들에게 또 한 번 은혜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아들에게 책임감을 가중시켜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다. 조건은 같다. 다만, '중2 되기 전까지'에서 '중3 되기 전까지'로만 조건을 변경했다.


그리고 중3이 된 올해. 이제 더 이상 아들의 게임은 우리 집의 분란 거리가 아니다. 게임과 관련하여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없다. 1년 반 이상 실컷 게임하며 '욕구를 충족한' 아들은 게임이 예전처럼 애틋하지가 않단다.


이제는 특별한 날 위주로 게임을 즐긴다. 중간·기말고사 후, 또는 간혹 있는 친구들끼리의 대규모 게임 이벤트가 그 예다. 물론 여유로운 주말도 게임을 하지만 그 횟수와 시간은 많이 줄었다.


비록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아들과의 게임 전쟁은 '윈-윈'이다. 모자간의 언쟁이 줄어들어 가정이 한층 평화로워졌으며, 절제를 배운 아들은 아직 부족하지만 제 할 일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져은 내가 대견스럽다.


혹시라도 자녀와 게임 문제를 겪는 학부모를 위해 아들과 게임 전쟁에서의 성공요인을 요약해본다.


자녀를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대화한다.

온가족이 볼수 있는 공간이 거실로 컴퓨터 옮긴다.

합의하에 게임시간 및 방식을 정해, 자녀에게 책임감을 심어준다.

태도가 즉시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실수가 되풀이되어도 인내한다.

부모가 한 약속은 철저히 지킨다.

일방적인 잔소리는 아니한 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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