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스위스 여성 3인방과 팔렝케에서 또다시 우연히 마주쳤다. 벌써 세 번째다. 이제는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함마저 들 정도다. 그 3인방은 20대 친구사이 두 명과 그중 한 명의 어머니이다.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마주친 아름다운 자연광경과 건축물들은 날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위스인들의 개방적인 성문화. 내가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시내 상점에서 스위스 20대 여성 한 명이 선물을 고르며 말한다.
"This is for my boyfriend."
'음, 남자친구가 있구나. 남자친구에게 선물도 하고 좋은 여자친구네.'
그리고 그녀는 똑같은 물건을 집어들며 덧붙인다.
"This is for my sex friend."
헉!....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순간, 어둠 속에서 동공이 확장되듯이 내 귓구멍이 크게 열리는 느낌이 든다. 같은 물건을 집으려던 내 손은 목적을 잃고 허공에 멈춰 선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리액션 기능이 고장나버렸다. 리액션의 달인인 내가 말이다.
그런 나의 모습에 스위스 여성 3인방은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이런 내 모습이 재밌었나 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저녁 식사하기 위해 다 같이 앉은자리에서 모녀 중 딸이 대뜸 묻는다.
"Have you had sex in the kitchen?"
동공이 흔들린다. 살며시 그녀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어머니 눈치를 살핀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포커페이스다. 용기를 내어 되묻는다.
"How could you say such a thing in front of your mom?"
나의 물음에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웃음을 터트린다. 매우 호탕한 웃음이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정색하며 한술 더 뜬다.
"Haven't you?" (그럼 넌 안 해봤어?)
이제는 혼란하다 못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이나 넘어섰다. 얘기를 들어보니 스위스 사람들은 가족이 다 함께 모인 식탁에서도 성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다. 민망한 건지, 부러운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런 '쇼킹'한 스위스 3인방과 평범한 멕시칸 가정을 둘러보았다. 팔렝케 유적지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서다. 그 집은 마치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한적한 시골집을 연상시켰다. 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집으로 넓은 뜰이 딸려 있고, 그 뜰에는 닭과 돼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 안의 방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해먹 6개가 거미줄처럼 그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한방에서 잔다고 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집의 9살 난 꼬마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던 것이 생각난다. 동양인인 내가 신기했던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어느덧 여행이 절반 가량 지나고 있다. 이 모험과 같은 여행이 앞으로의 내 삶에 큰 밑거름이 되길 바라 본다.
<팔렝케 유적지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멕시코 가정집. 그 집 꼬마는 나를 잘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