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16일
아침부터 감기 기운으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침대 바로 옆에 창문이 있는데 밤새 그 창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 덕에 잠을 설쳤다.
오전 9시 반에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Sancristoabl de las Casas)'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도 상으로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처럼 보였으나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륙으로 이어진 목적지로 가는 길은 온통 산길이었다. 5시간 반 내내 버스 안에서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테크노 춤을 추듯이 심하게 흔들렸다.
좌우로 몸이 휙휙 휘둘리다가 엉덩이가 위아래로 들썩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이리 쿵, 저리 쿵' 버스에 몸을 맡기며 어쨌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몸이 상태가 좋지 않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바로 숙소를 구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산책한 후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쉽사리 잠을 잘 수 없다.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지는 나인데 쉽지 않다. 그 원인은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여행객 때문이다.
내가 구한 숙소는 개별 방이 아닌, 시멘트 바닥의 큰 방에 여섯 개의 단층 침대가 펼쳐진 그런 곳이다. 문도 철문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끼이익, 끼익"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에 더해 문과 시멘트 바닥 사이에 어림잡아도 5cm 정도의 꽤 큰 간격이 나 있다. 그 사이로 황소바람이 "쉬익, 쉬이익", "휘이잉, 휭"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바람소리가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기에 가격은 무척 저렴하다.
여행객은 국적 불문, 성별 불문이다. 한 명이 나가면 바로 다른 명이 빈자리를 채운다.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는 캐나다, 체코,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4명의 여행객이 방 안쪽의 침대를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침대는 철문 바로 옆의 두 개뿐. 어쩔 수 없이 그중 하나를 택했다. 그나마 철문과 조금 더 떨어진 침대다. 나를 포함하여 그렇게 총 5명의 여행객이 한 방에 묵게 되었다. 남자 둘, 여자 셋이다. 하지만 이곳은 남녀 구분이 없다. 모두들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며칠 전에 도착한 프랑스 여성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던 중이다. 그녀는 이런저런 관광정보를 내게 일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상의와 하의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옷을 갈아입는다. 여전히 나와 대화하면서 말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이러한 문화충격을 이미 수차례 겪은 터다. 나도 이에 질세라 주눅 들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며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면서 소심하지만 나름 '동양인의 기개'를 보여줬다고 자부해본다. 물론 이러한 '기개'는 상대방이 전혀 눈치 못 채는, 심지어 생각조차 못할 오로지 나만이 느끼는 비장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