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17일
최악이다. 철문 바로 옆에서 잔 나는 밤새도록 추위와 싸워야 했다. 말 그대로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그렇잖아도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더 심해졌다. 그래도 시멘트 바닥의 6명이 모여 있는 방에 하루를 허비할 수 없다. 이런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제 등록한 말타기 체험을 하러 가는 길이다. 말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민속촌에서 조랑말을 타고 조그만 운동장을 터벅터벅 한 바퀴 돌아본 게 전부다. 속도를 따지자면 초등학생의 걸음걸이 정도로 매우 느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고삐도 어른인 큰 키의 사육사님의 손에 쥐어졌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7살 정도로 보이는 멕시칸 꼬마가 내가 타는 말의 고삐를 쥐며 컨트롤한다. 어린 시절 작은 체구였을 때 큰 키의 사육사님이 내 말을 조종하였다면, 다 커서는 내가 타는 말을 작은 체구의 아이가 조종하는 것이다.
내게 말을 내어주며 꼬마 아이를 따라가라는 안내자의 말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조랑말도 아닌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큰 키의 말을 타고 몇 시간 동안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는 체험을,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도 안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에게 의지하기엔 너무나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 꼬마는 본인 키보다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말에 훌쩍 올라타며 내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내 말의 고삐를 힘껏 잡아당긴다.
내 말은 그 꼬마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듯 발걸음을 떼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불안감에 떨며 내 안위를 꼬마 아이에게 맡긴 채 말타기 체험을 한다.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꼬마를 보면서 내 불안감은 어느새 조금씩 사그라든다. 앞서가는 꼬마의 등과 말의 엉덩이만 보던 나는 어느덧 주위 환경을 둘러볼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말고삐도 내가 쥐고 있다. 특별한 기술을 부리지 않아도 내 말은 앞서가는 꼬마의 말을 잘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도로를 가로질러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가고 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지나니 조그마한 숲 속이 나온다. 숲속을 말을 타고 지나니 마치 사극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든다.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하기 위해 한 장수가 위험을 무릅쓰고 혈혈단신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린다.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말이 좀 더 빨랐으면 했지만 실제로 말이 달린다면 십중팔구 낙마할 거란 생각에 걷는 속도에 만족해하며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그러다 편도 1차선의 도로와 맞닥뜨린다. 이미 꼬마는 그 길을 건넌 상태고 내 말이 그 뒤를 따르더 중이다. 그러다 갑자기 내 말이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선다. 멀리 한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가 보인다.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말의 배를 걷어차며 앞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꿈쩍도 안 한다. 용기를 내어 더 세게 걷어찬다. 꿈쩍도 안 한다. 식은땀이 난다. 고삐를 당겨본다. 드디어 말이 움직인다. 움직이기는 하는데 말이 제자리를 빙빙 돌기만 한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양쪽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던 차들이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급기야 내가 탄 말 앞에서 멈춰 선다. 탁 트인 시야 덕에 멀리서도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말과 그 위에 당황해하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멕시칸 꼬마가 다가와 내 말의 고삐를 잡아챈다. 그제야 나는 무사히 편도 1차선의 도로를 건너게 된다. 양쪽 방향의 각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보낸다.
그들은 흔쾌히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답례해준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차 있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십년감수한 기분이다. 그 이후로 꼬마는 내 말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그렇게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모험이 이어진다. 오솔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고 언덕을 오른다. 한참을 지나니 한쪽 편에 한 건물이 보인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학교로 보인다. 몇 명의 꼬마들이 울타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빼꼼히 쳐다본다.
내가 신기한가 보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어렸을 적 호기심에 외국인이 보이면 멀찍이 떨어져 구경했기에 그 장면이 어색하지 않다. 당시의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정작 외국인이 내게 인사하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내가 손을 흔들면 저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호기심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준다. 그러자 건물 안에 있던 수십명의 아이들이 나를 보기 위해 우르르 뛰쳐나온다. 나와는 정반대다. 나는 도망갔는데, 여기 아이들은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찍는다. 마치 연예인이 팬들과 사진을 찍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우노, 도스, 트레스"하며 하나, 둘, 셋을 센다. 사진이 찍히는 찰나, 뒤늦게 몇몇의 아이들이 합류하며 소란이 인다. 한 아이는 땅에 뒹굴고, 또 다른 아이는 그런 아이를 나무란다. 그 덕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한잠을 더 가니 언덕인지 아니면 작은 산인지 모를 정상에 다다른다. 그곳엔 마침 소풍 나온 4명의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고 흔쾌히 본인들의 식탁에 나를 초대해줬다.
밀로 만든 얇은 천같이 생긴 토티야를 찢어 손에 쥔 채, 닭고기 요리를 감싸서 먹는다.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왠지 찝찝하지만 그래도 맛은 일품이다. 양념까지 깨끗이 토티야로 닦아서 먹어치웠다.
그 여학생들은 중국과 일본 등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였지만 왠지 한국은 잘 모르는 눈치다. 역시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아직까지 미미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게 나의 짧지만 파란만장한 말타기 체험이 마무리되었다. 말 위에 있던 몇 시간 동안 내 엉덩이는 허공에 떴다 내렸다를 수없이 반복했고 그 덕에 그날은 엉덩이가 깨질 듯이 아팠고,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행복한 기억만큼은 너무나도 생생히 내 기억창고에 저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