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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Nov 14. 2021

새 책으로 공부할 수 없는 아이

중3 아들 영어 과외하기

아들과 같이 서점을 방문한다. 올 상반기 중3인 아들의 영어과외를 시작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과외 시작 전 교재로 활용할 참고서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서점에서 여러 권의 책을 살펴봤지만 딱히 끌리는 교재가 없었다. 근 20년 전, 영어강사 시절 사용했던 교재를 재활용하기로 하면서 영어교재 대신 아들과 함께 핫도그만 사 먹고 돌아왔다.

<아들 영어과외의 첫 번째 교재. 아들보다 3살 많은 2003년생이다>

그렇게 영어과외 시작은 2006년생인 아들보다 세 살 더 산 교재와 함께였다. 이후 독해 위주의 공부를 위해 EBS에서 발행한 수능교재 두 권을 더 끝냈다. 이번에는 고3인 제 누나가 보던 교재를 활용했다.


세 권의 책을 마치니 아들도 나도 일종의 피로감이 생긴 듯하다. 마침 아들의 중간고사 기간이라 잘됐다 싶어 이를 핑계로 한 달 간의 휴식 기간을 가졌다.


물론 아내는 이러한 휴식 기간을 마뜩잖아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은 아들대로 중간고사 준비에 바빴고 나는 나대로 회사 일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 누나가 보던 두 권의 수능 교재>

아들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물론 과외강사인 내 입장에서는 영어점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영어점수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


수능교재의 테스트와 학교 시험의 점수가 비슷하다. 즉, 큰 틀에서 아들의 영어실력은 뛰어나나 세밀한 주의를 요하는 학교 성적에는 뭔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에게 슬쩍 물어본다.

"아들, 이제 아빠랑 과외하는 거 그만두고 영어학원 다닐래?"

물론, 진심은 아니다.


"아니, 영어학원 다니나 안 다니나 마찬가지일 거 같아. 그냥 교재 사서 아빠한테 모르는 것만 물어보는 걸로 할게."


안심이다. 사실, 꼭 자녀가 아니어도 통상적으로 과외를 6개월 이상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학생과 강사 간 서로 익숙해지고 편해지다 보면 긴장감이 떨어져서 학습효과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그럼 다음 교재는 뭘로 할까?"

"문법이 아직 부족한 거 같으니 문법책을 한 권 더하면 좋을 거 같아."


그렇게 우리 부자는 새로운 교재를 사기 위해 두 번째로 서점에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꼭 교재를 사야 하기에 전보다 더 꼼꼼하게 다양한 교재를 살핀다. 그러다 눈에 띄는 교재를 발견한다.


구성도 적절해 보이고 편집이 깔끔해 마음에 든다. 아들도 좋다는 표시를 한다. 드디어 세 권의, 한 권은 아빠의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제 누나의 교재를 끝낸 후에야 아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새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아들은 장난 섞인 어조로, "드디어 나도 새로운 책으로 공부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자랑스레 책을 제 누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딸은 후다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나타난 딸은 그 책을 제 동생에게 보여준다. 똑같은 책이다. 방금 우리 부자가 서점에서 심혈을 기울여 골랐던 책과 똑같은 책이 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발행 회사 및 버전이 완전히 일치한다. 더군다나 책을 거의 보지 않아서인지 책 상태도 최상이다. 첫 몇 페이지만 필기가 되어 있을 뿐 새 책과 다름없다.

<딸이 방에서 갖고 나온 책. 상단에 딸의 이름이 떡 하니 써있다.>

딸이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우하하하. 똑같은 책이 내게 있지." 그리고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덧붙인다.

"이럴 줄 알고 내가 이 책을 거의 보지 않았나봐. 아주 깨끗해."


결국 아들은 새 책으로 공부할 기회를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고, 나는 서점에서 오자마자 책을 환불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게 된다. 그때 등 뒤에서 아들의 절규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새 책으로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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