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 "다같이 놀아요"
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19일
멕시코는 땅이 광활하다. 그러기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버스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십중팔구 밤에 출발한다. 그런 버스를 타기 위해 밤늦게 버스터미널을 찾았다.
<멕시코에서 이용했던 버스터미널 중 한 곳.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한밤 중의 버스터미널치고는 여행객으로 꽤 붐빈다. 모두 나처럼 도시 간 이동을 위해 야간에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다음 목적지는 '오하카(Oaxaca)'. 버스로 약 10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산 후안 차물라에서 오하카까지 버스 경로. 약 630km다.>밤 10시에 출발하여 오전 8시 30분경 오하카에 도착했다. 또다시 아침해를 버스에서 맞았다. 우선 숙소를 구하고 여장을 푼 후 밤새 버스에서 설친 잠을 청한다. 오후 쯤 일어나 여유 있게 느릿느릿 밖으로 나간다.
언제나처럼 새로운 도시의 첫 방문지는 시내 한복판에 조성된 소칼로(zocalo).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원 겸 광장이다. 그곳에는 항상 음악과 춤이 있다. 물론 무료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밴드부터 4인조의 노래하는 밴드까지 다양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다채로운 행사도 구경할 수 있다.
두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한다. 악기 소리에 집중하며 흥얼거리다가, 흥겨운 노랫소리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참 좋다.
<멕시코 여행 중 방문한 도시에서 찍은 소칼로. 현지를 만끽하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그리고 내가 항상 소칼로를 찾는 또 다른 이유. 바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쁨 중 절반은 아마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다. 오늘도 소칼로에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다.
"Excuse me." 한 여고생이 다가와 나를 부른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한편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10여 명의 여학생들이 굉장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학생의 손에 이끌려 여고생 무리에 합류했다. 그중 한 여고생이 다짜고짜 말한다.
"I love you."
순간 어리둥절. 그러나 싫지 않다. 한 명이 "I love you."라고 하니 마치 대중가요의 후렴구라도 되듯, 여러 명의 학생들이 "I love you."를 외친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학생들의 표현이 서투르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나름 의역해본다. "같이 놀아요." 정도로 해석된다.
"I love you."라고 하면서 학생들은 내 양팔을 각각 잡으며 더 많은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여기서 'love'는 그냥 '다 같이 놀자'라는 뜻이다.
그 학생들은 다른 도시에서 수학여행 왔다고 한다. 그들과 같이 긴 풍선을 가지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너도나도 자기 집으로 같이 가자고 조른다. 본인들이 타고 온 버스를 같이 타면 된다면서.
아이들이 조른다고 실제로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졸라대는 학생들과의 헤어짐이 무척이나 서운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정들었나 보다.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의 광장인 소칼로. 그 곳에서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하나 더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