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9, 그 시절 배낭여행
응답하라 멕시코, 프롤로그
2021년 10월 어느 날.
올여름 계곡에 놀러 갈 때 사용했던 캠핑의자를 정리하기 위해 창고로 사용 중인 팬트리를 열었다.
주인이 게으른 탓에 두 달여를 현관 한쪽에 방치되었던 처지에 드디어 제 자리를 찾는 순간이다.
한동안 사용할 일이 없기에 팬트리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헤집어 공간을 마련했다.
캠핑의자를 놓고 나오려는데, 선반 가장 밑에 놓인 낯익은 낡은 사진첩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첩을 꺼내 펼쳐본다.
20여 전 총각 시절의 배낭여행 사진이다. 한 권은 1997년 한 달간 떠났던 유럽, 그리고 다른 한 권은 1999년 3주간 멕시코에서의 추억을 담은 사진첩이다.
20년이 넘은 사진첩 치고는 상태가 양호하다. 사진첩을 꺼내어 고3, 중3의 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바로 아빠의 리즈 시절이라며 사진을 보여준다.
아빠에게 항상 살 빼란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첫째 딸이 말한다.
"우와, 아빠 엄청 날씬하네. 평생 날씬한 적 없었다며. 잘생겼네!"
여행에 관심이 많은 아들도 한마디 거든다.
"아빠 멋있게 살았네. 꼭 유튜브 여행채널 보는 거 같아."
사진첩에는 20대 시절의 추억이 가득하다.아이들의 칭찬에 으쓱해진다.
"이래 봬도 아빠가 말이야 ~~~ " 하며 '라떼' 시절을 읊조린다. 오래간만에 아이들이 아빠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첩을 보면서 시간과 공간을 건너, '그때 그 시절, 그 장소'로 추억 여행을 한다.
20대 초중반,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험에 가까운 배낭여행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다 2001년 결혼하면서 내 인생의 배낭여행은 막을 내리고 만다. 하지만 그때의 배낭여행은 여전히 나에게 현재 진행형이다.
배낭여행을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와 긍정적 마음가짐을 얻었다. 그때 그 시절 배낭여행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멕시코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자 생각지도 않은 여행지였다.
당시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어학연수생으로 있었다. 당초 최대 1년 일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차가 없는 삶이 단순하고 무료해 계획을 수정하여 4개월 만에 밴쿠버로 온 것이다.
4개월 만에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영어실력을 다른 나라에서 시험하고 싶은 욕구도 한몫했다. 당시 다녔던 어학원에는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라 여건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 밴쿠버의 어학원은 그야말로 한국의 영어학원과 다름없을 정도로 한국 학생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결국, 밴쿠버에서 영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미국에서의 4개월, 캐나다에서의 1개월을 끝으로 어학연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밴쿠버의 한 여행사에 들러 인근 국가로 떠나는 값싼 비행기표를 요청했다.
며칠 후, 멕시코 마자틀란으로 떠나는 비행기표가 반값에 나왔다는 말에 무작정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문제는 출발일. 이틀 후에 출발한단다.
그 길로 서점에 들러 배낭여행의 바이블, '론리플래닛'과 멕시코 지도 한 장을 샀다.
스마트폰이 없고 인터넷 사용이 매우 제한적이던 시절, 가이드북과 지도는 요즘의 구글이자 내비게이션이었다.
밴쿠버 길거리에서 만난 멕시칸에게 여행할 만한 곳을 즉석에서 추천받아 지도에 표시했다.
그렇게 나는 멕시코 배낭여행을 떠났다. 때는 1999년 3월.
대략적인 여행 경로만 계획하고 무작정 떠난 여행
좋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여행
피라미드의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가족이 생기면 다시 와야겠다고 결심한 여행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얻은 여행
18년 후, 아내와 아이 둘과 다시 방문한 그 여행
p.s.) 여행기는 20년 전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을 다듬고 사진을 추가하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