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 답게 나는 종종 별시덥잖은 상상을 하곤 한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로또에 당첨된다면, 모든 것을 잘하는 능력이 생긴다면 등등...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지로 단순히 끝날 텐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세밀한 부분까지도 머릿속에서 구상한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상상은 '아기 낳기 전으로 돌아간다면...'과 '몸이 두 개라면....'이다. 특히 요 며칠은 내 몸이 하나라는 사실이 화가 날 지경이다. 진정 몸이 두 개일 순 없나요?
오늘은 정말이지 몸이 두 개가 되고 싶은 날이었다. 첫째는 18개월이 되니 말로만 듣던 씨팔개월이 되어가는 중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엄마'(짜증 섞인 고함)와 '아나(안아)'이다. 이젠 제법 기억력도 좋아지고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는데 몸과 말이 그만큼 안 따라주니 짜증투성이. 18개월 동안 온종일 붙어있었던 탓에 첫째 말이라면 척하면 척으로 잘 알아듣는 나이지만 그래도 종종 그의 바디랭귀지와 옹알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그 짧은 순간 난리가 난다.
둘째는 최근 들어 그야말로 미친 잠투정을 보이고 있다. 밤만 되면 엄청난 울음소리와 함께 허리를 활처럼 휘고 쪽쪽이는 다 뱉어버리면서 길게는 2시간 넘어까지 잠투정을 한다. 재우는데 기본 1시간이다. 도와주시는 양가 어머님들도 재우는 것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실패하실 때가 많아 첫째를 후다닥 재운 후 둘째도 내가 재우는 편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첫째가 잠을 일찍 안 자는 날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런데 요 며칠 첫째가 너무 늦게 자는 것이다. 후...
오늘 저녁, 남편이 출근하고 나니 나에 대한 첫째의 집착(?)이 더더욱 심해졌다.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계속 '엄마'와 '안아'를 외친다. 듣고 있던 큰 동생은 엄마노이로제에 걸리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막냇동생과 엄마마저 저래서 3월에 어린이집 적응하겠냐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그 와중에 이제 5개월에 접어드니 둘째도 엄마를 아나보다. 거의 할 아키(할머니가 키운 아기) 수준임에도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품을 아는 것 같다. 첫째를 안고 돌아다니느라(여기 가라 저기 가라 계속 지시한다) 자기 눈밖에서 사라지면 우는 것이다. 포대기하고 있는 엄마는 쩔쩔매고 막냇동생도 옆에서 엄마를 도와 빠지는 쪽쪽이 계속 입에 물려주고 딸랑이 흔들어주고...
겨우 첫째를 방에 눕혀 재우는데 방문 너머로 둘째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 진땀 빼는 엄마와 남동생의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아직 손가락을 빨며 선잠 중인 첫째를 두고 나가다가 첫째까지 깨버리면 더 난장판이 될 것을 알기에 오늘도 꾹 참는다. 얼른 첫째 자기만을 기다린다. '자라.. 자라.. 제발 자라...' 손가락 빨던 게 멈췄다. 몸을 뒤척이지 않는다. '됐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얼른 거실로 나갔다.
나가고 보니 다행히 둘째가 울음을 멈추고 쪽쪽이 문 채로 할머니 등에서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었다. 둘째에게 "엄마한테 올래?" 했더니 갑자기 훌쩍거린다. 그러더니 얼굴을 반대편으로 휙 돌려버린다. 꽤 여러 번을 그랬다. "나한테 삐졌나 봐..." 엄마도 보더니 '아이고야 이제 이 아도 엄마를 아나보다' 하신다. 마음이 아프다. 둘째를 안아서 한참을 또 잠투정과 씨름하다가 겨우 눕혀 재웠다. 꼬물꼬물한 손을 꼭 잡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면서 한참을 있었다. 사실 그동안 재우고 나서 또 얼른 첫째한테 간다고 늘 둘째 곁에 오래 있지 못했다. 아직 첫째는 중간중간 잘 깨는데 깼을 때 옆에 없으면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둘째 옆에 좀 더 오래 있기로 했다. 오늘 재울 땐 확실히 이젠 내 품을 아는 것 같고 같이 있어주지 않아 속상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째랑 같이 있다가 잡은 손을 스르륵 빼고 토닥거리던 손도 슬그머니 떼내서 다시 첫째 곁으로 갔다. 엄마가 없는 걸 눈치챘는지 금방 다시 깨버린다. 또다시 가서 재우고... 또다시 가서 재우고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이젠 첫째가 난리다. 동생 울음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동생한테 갈 걸 아는지 발딱 깨서는 엄마를 찾는다. "엄마 옆에 있어 옆에서 같이 누워있어"하고 손잡아주고 토닥토닥해주면 이내 잠들다가도 중간중간 또 확인한다.
정말 이제 어쩌나...? 몸이 두 개라면 끄떡없을 텐데... 몸이 두 개면 첫째랑 놀아주면서 둘째도 놀아주고 첫째 유아식 먹이면서 둘째 분유도 먹이고 첫째 재우면서 둘째도 재우고... 그런 평온한 하루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상상해 본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둘을 키울 땐 불가능한 것일까? 첫째도, 둘째도 온전히 다 챙기지 못하고 온전히 다 엄마의 사랑을 주지 못하니 참 둘에게 못할 짓한다 싶다.
동생에게 엄마를 뺏길까 봐 잠자다가도 깨서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는 첫째도 짠하고 엄마가 오빠한테 가버리는 모습을 할머니품에서 맨날 바라보기만 하다가 잘 때마저 가버리는 엄마를 가지 못하게 손가락 꼭 쥐는 둘째도 짠하다. 그러니 그런 짠한 첫째 질투한다고, 생떼 부린다고 딱밤이나 협박하며 혼내는 남편도 못마땅하고 둘째 보고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겠다고 팩트폭력하는 아빠도 밉나 보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육아를 온전히 내 힘으로 하지 못하고 양가 어른들 도움 있는 대로 다 받아가며 하면서도 제대로 아이들을 잘 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화난다.
하루빨리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내 몸이 두 개가 되는 불가능한 상상은 그만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