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시절 나는 뻔질나게 옷 쇼핑을 했다. 어릴 때 사고 싶었던 것 마음껏 못 샀던 욕구가 뒤늦게 터져버린 것인지 화장품이건 옷이건 매달 마구 사재꼈다. 소심쟁이라 점원이 달라붙을까 봐 매장에서의 구매는 선호하지 않았고 주로 인터넷으로 샀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단지 유행이란 이유로 사기도 하다 보니 망한 적도 많았다.
반면 육아하는 지금은 옷 쇼핑이랑은 담을 쌓고 산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옷쇼핑'이다. 아기옷은 또 잘 산다. 연년생이라 2년을 내리 임신하다 보니 더더욱 옷 쇼핑과는 담을 쌓았다. 출산 전에는 예쁘지도 않은 임부복 뭐 하러 많이 사겠나 싶어서 안 사고 출산 후에는 아기 육아하는데 편한 옷만 입다 보니 또 안 사게 된다. 미혼일 때 '입을 옷이 없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때는 옷무덤 속에 살면서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는 뜻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입을 옷이 없다'
얼마 전 자유부인 기회가 생겨 준비를 하는데 입을 옷이 정말 없어 막막했다. 없는 옷을 뒤지고 뒤져 그나마 괜찮은 것 입고 나니 또 이번엔 가방이 없다. 그냥 기저귀 가방으로 쓰던 백팩을 맸다. 화장을 하려고 파우치를 열고 파운데이션을 짜니 안 나온다. 아주 딱딱하게 굳어 꽉 막혀있다. 유통기한을 보니 임신 전이다. 화장을 포기했다. 해도 딱히 화장을 잘하진 않다 보니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굳이 유통기한 지나 굳은 화장품을 쓰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평소와 다른 듯하면서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밖을 나서려고 하니 남편이 나를 세운다.
"뭐야? 그렇게 간다고?"
"왜?"
"옷 그거밖에 없어? 가방은? 가방 기저귀 가방이잖아"
"없어 없어~ 괜찮아 괜찮아. 가방 원래 이거 그냥 일반백팩용도야. 정말 이거밖에 없어"
"그러게 내가 옷 좀 사래두... 가방 이거 말고 내 거 들고 가"
"아냐 됐어 내께 편해"
"너 남편 욕보일 일 있냐"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시어머니도 계신데 말이다. 시어머니도 처음엔 내 편을 들며 자기 편한 거 입고 가게 하지 왜 그러냐 하시다가 막상 내 차림을 보니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방이 좀 심하다. 얼룩 있네~"
"괜찮아요 이게 편해요"
"화장은?"
"전 이게 편해요 괜찮아요"
"아구.. 아직은 편한 거보다 예쁘게 다녀야 할 때인데... 편하게 입고 다니는 건 우리 때지~아직은 한참 꾸밀 나이인데..."
결국 남편과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저 구석에 있는 상자를 뒤지고 뒤져 다른 가방을 꺼내고 얼굴에 선크림과 립밤이라도 덕지덕지 바르고 출발했다. 아뿔싸! 출발하고 보니 신발도 크록스다. 맨날 아기랑 있을 때 신고 벗기 편한 크록스만 신다 보니 몸이 저절로 크록스를 신어버렸다. 가방만 달라졌을 뿐 약간의 분칠(?)만 좀 더 했을 뿐 하루종일 육아하는 평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그렇게 신기 싫어했던 크록스가 내 분신이 되어버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계절 내내 크록스만 신는다. 피부 트러블이 많다 보니 볼터치며 쉐도우며 쓸 수 있는 화장도구란 화장도구는 다 쓰며 가리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누가 보면 뭐 어때'라는 마인드로 로션조차 바르지 않은 자연인 그 자체다. 내가 원피스를 입거나 차려입는 것보다 청바지에 티처럼 편하게 입는 걸 선호하던 남편도 요즘에는 나의 너무 내추럴한 차림에 '이렇게 밖에 나간다고?'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어째. 정말 이것 밖에 입을 게 없는걸...
친구들 만나고 나니 좀 너무 심한가 싶기도 하다. 같은 나이인데 나는 누가 봐도 애 엄마다. 옷 좀 살까? 화장품 좀 사놓을까? 하다가 막상 쇼핑하려고 보니 살게 없다. 이 옷은 까끌거려서 아기 안을 때 안 되겠고 이 런 옷은 앉았다가 일어설 때 불편하고... 이건 사서 몇 번 입을 수 있겠어? 혼자 장바구니 담았다 뺐다 담았다 뺐다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에잇~ 더도 덜도 말고 딱 내년까지만 이렇게 살 거야...! 복직 앞두면 예쁜 옷도 많이 사고 화장품도 좀 사고... 잘 꾸미는 친구들에게 특강도 좀 받고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