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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아주 특별한 하루

엄마 자유부인되다!

by 도토리

오래간만에 자유부인의 기회가 주어졌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밥도 먹고 카페고 사고 소품샵도 구경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라고 mz 선생님께 배운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 예전에는 '아보하' 였던 것들이 요즘에는 '아특하'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하루다.

아기를 낳기 전, 우리는 서로 사는 곳이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고 워낙 성향이 잘 맞고 친했던지라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났다. 주로 만나던 곳은 중간 지점인 서면. 만나는 장소도 같고 만나는 사람도 같았지만, 둘 다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늘 만남은 이전과는 꽤나 많은 것이 달랐다.


우선 약속 정할 때부터 달랐다. 예전에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귀속되어 있지 않은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보려고 마음먹으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나는 남편에게 연차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개인 스케줄은 한 달 내내 텅텅 비어있으나 아이를 봐줄 남편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친구 역시 그랬다. "남편한테 한 번 물어보고 알려줄게~!"


약속장소와 시간 정하는 것도 벼락치기도 이런 벼락치기도 없다. 예전에 우리는 일주일 전에 미리 약속시간을 정하고 수많은 맛집을 검색한 후 추리고 추려 정했다. 반면 이번에는 약속 전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약속시간을 정하고 정확한 약속 장소는 서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이동 중에 정했다. 급하게 정하다 보니 검색보다는 예전에 다른 친구와 가봤던 곳으로 리스트가 추려졌다.


대화주제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학교일, 동기들 근황, 소개팅 일화 등을 이야기 나누던 우리가 이제는 모든 대화주제가 육아와 아기가 되어버렸다. 아기의 발달, 아기 장난감과 책, 육아의 고됨 등등... 다른 이야기를 해볼 생각도 못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육아와 아기를 빼놓곤 정말 남는 것이 제로였다.


매번 만날 때마다 문구점이나 소품샵에서 마음에 드는 교실 아이템을 사모으던 우리가 이제는 마음에 드는 딸내미 머리핀을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고작 머리핀 2개를 사는데도 이 머리핀은 아기가 하기에 너무 크고 이건 머리숱 없는 아기 머리가 고정이 잘 안 될 것 같다며 의견 나누며 진지하게 고르는 모습이 퍽 우습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다른 점은 헤어질 시간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만나서 언제까지 놀아도 아무 상관없었다. 밤새는 것도, 막차 타고 헤어지는 것도 ok! 외박 no problem!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신데렐라처럼 주어진 시간이 있다. 기준은 첫째의 하원시간. 그래서 약속 잡을 때도 최대한 오래 친구와 보고 싶어 등원시키자마자 만나자 한다. 물론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시어머니께서도 와주셔서 첫째 하원시간보다 좀 더 늦게까지 놀 수 있어 예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4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리고나니 마치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린 것만 같다. 연년생 둘 키우는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띡띡띡- 현관문 여는 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며 두 아이가 나에게 달려와 폭삭 안긴다. 늘 남편이나 부모님을 향해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만 보아오다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의 그 모습이 사뭇 낯설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자마자 아이들이 산더미처럼 들고 오는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주었다. 저녁 시간, 밥 한 숟갈 뜨려고 하면 내 양다리를 붙잡고 울어대는 통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다.

'맞아. 이게 원래 내 일상이지^^;' 정말 마법 풀린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아주아주 아쉽다.


친구와 만나 밥 먹고 커피 한잔하고 쇼핑하는 오늘의 일과는 예전의 나에게 아주 보통의 평범한 하루였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하루이다. 이 사소한 하루를 이토록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오늘의 이 특별한 하루를 귀히 여기며 다시 내일부터는 온전한 나의 '아보하'로 돌아가서 씩씩하게 육아를 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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