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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Nov 01. 2020

유방암 입원실에 이상한 엄마를 두 환자

나와 유방암 수술 동기의 이야기

모든 엄마가 다 희생적이고 자애롭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군가의 엄마는 자식을 보실필 수 없을 정도로 유약하기도 하다.


나와 나의 유방암 동기의 이야기다.


내가 유방암 선고를 받고 본가에 들러 질질 짤 때 엄마는 그 엄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네 구멍 병원에서 오진한 것을 듣고 왜 우냐며, 대학병원에서 분명히 아니라고 할 거라며 두고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진이 아니라는 것을. 오진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기에는 조직검사의  통증이 너무도 예리하게 남아 있었다.


대학병원은 별다른 검사 없이 동네 병원의 진료 차트와 초음파 영상을 보고 바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엄마, 내가 뭐랬어...


앞서 내 글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서울대를 맹신하는 부모님은 가장 최고의 선생님께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그것도 소위 잘본다는 샘을 알아내 예약을 했다. 같은 병원 교수에게 전화해 이만저만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대망의 입원날. 엄마의 불안을 견뎌내지 못한 나는 엄마를 애써 돌려보냈고, 바통 터치를 받은 아빠의 코골이를 들으며 무섭도록 차가운 밤을 보냈다.


불안보다는 아빠의 태평함이 나았다.

(아빠 정말 태평하게 누워서 노트북하는 사진이 내 핸폰에 박제되어 있수다 ㅋㅋ)


병원에 나처럼 젊은 환자라 온 집안 식구들이 총출동한 케이스와 이미 엄마인 여성들로 나뉘었다. 젊은 환자라는 것은 불운한 일이었지만 부모가 젊은 건, 연로한 것보다야 백 배 나았다. 앞 침대의 어머니의 경우, 부모님 연세가 너무 많아 아픈 딸보다 더 고단해 보였기 때문이다(흑흑). 그분은 젊고 태평한 우리 아빠와 그 아빠를 놀려대는 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부녀 사이가 좋아 보여 너무 부럽다고 했다.


아빠, 좀 적당히 웃겨 줄래?!

아빠, 그만 좀 TMI 하지 않을래?

대체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왜 하는 거야...


부부나 커플, 단짝 친구처럼 두 사람의 관계성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에서 한쪽이 예민하면, 비교적 한쪽이 평안한 축에 속하기 마련이다. 우리집에서 예민이 엄마의 영역이라면 무사안일과 낙관은 아빠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 입원실에서 나와 같이 젊은 환자인데 엄마도, 남편도, 동생도 없이 홀로 왔다갔다 하는 언니가 있었다. 남편은 어린 아이들을 보느라 오지 못했고, 엄마는 입원한 첫날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집과 비슷했다. 함께 있으면 더 불안하다는 것!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선생님에게 수술을 받고, 병기도 암세포의 성향도 비슷해 지금껏 연락을 하고 지낸다.


피주머니를 차고 복도를 걷다가 입원실이 답답하며 창가쪽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곤 했다. 종종 입원실에 들른 고모는 창밖에 눈에 소담하게 내린 광경을 보며 “두 사람을 축복하는 눈이 오네”라며 친가 특유의 낙관을 드러내곤 했다.


퇴원 날, 고모는 그 언니가 심지어 혼자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더라며 짠해했다.


모든

엄마가 다른데

우리의 엄마는 좀

비슷했다.


내가 낮은 병기에 암세포의 성격도 순하고

브라카 유전자도 없다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엄마는 다시 큰소리를 치며

주인공 욕구가 다분한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어 안도하는 듯했다.

비운의 캐릭터는 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평생 성공 신화 스토리의

원톱 주인공만 해온 고집 센 여배우처럼.



“내가 뭐랬어! 괜찮다고 했지!”



맞습니다.

나는 제법 괜찮습니다.

계속 괜찮을 거고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YYwZ2SU0yKEIWq17ayyF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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