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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Nov 02. 2020

장애가 있었던 내 친구

빨간 스웨터를 자주 입었던 친구에게

초등학교 3학 년 때쯤이었다. 희미한 기억 속을 되짚어보건대, 나에게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어떤 면이 어떻게 불편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외톨이였다. 왕따였던 것도 같다. 물론 당시에는 괴롭힘의 문화가 지금처럼 집단적이고 노골적이지 않아 정신적인 외상까지는 입지 않았지만 어린 나는 늘 애매하게 괴로웠다. 마음을 나누거나 무리 지어 다닐 친구가 절실했다. 또래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을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조차 너그럽게 받아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고학년이 될 때까지는 나는 늘 친구들의 시간을 바삐 쫓았던 거 같다. (그래서 일찍 책과 벗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런 나에게 친구가 생겼다. 학교에서 외톨이라면 손에 꼽는 두 아이가 어쩌다 말을 섞게 된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친구는 한 학 년 정도 위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친구의 모습이 나와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편견없고 순수한 모습에 내 마음의 안개마저 걷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아이와 있는 동안 어리숙한 아이도, 조금 느린 아이도 아닌 그저 나로서 편안히 존재할 수 있었다. 비로소 친구가 생긴 것이다.


남몰래 친구의 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그 집에서 키우던 요크셔테리어도 봤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집 어머니는 처음으로 데려온 친구인 나를 무척 예뻐해주었다. 반겨주는 어머니, 열린 문 사이로 구경 나온 작은 강아지, 테이블 위에 놓안 달달한 과자들... 나는 친구의 세계에 매료되어 몇번이고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그리고 가지 못하는 날에는 그곳을 늘 그리워했다.


그런데 우리의 우정은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나와 그 친구가 친구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아, 친구들이 나를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색적인 놀림에 덜컥 겁이 났다. 못된 아이들은 영악하게 수군댔다. 두려웠다. 다시는 저 무리에 끼지 못하게 될까봐. 그날 나는 함께 하교를 하기로 한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다가 -둘째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성격이 둥근 사람과도 잘 지내고 예민한 사람과도 잘 지냈다. 외국 학생하고도 같이 다니고 장애 학생이랑도 같이 다녔다.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다운증후군이 있던 친구 이야기가 고등학교 때 나왔을 때 반응은 너무 지수다웠다. “걔가 다운증후군이 있었다고?”- 이 대목을 읽는데 문득 그때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콧물이 차올라 코가 막힐 때까지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났을까.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한번도 그 친구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애들이 놀릴 때 좋은 애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는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복도에서 친구를 등지고 달렸을까.


그후 우리 집은 당시 살았던 강변역 인근에서 멀리 떨어진 중계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내 기준에서 다분히 살벌했던 그 동네와 영영 작별을 하게 되었다. 차라리 좋았다. 엉망진창이 된 학교 생활을 리셋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고. 시궁창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때때로 그 친구를 생각했다. 짙은 눈썹에 웃는 입이 크고, 커다란 리본핀으로 반묶음을 하고 있던 언니. 언니의 빨간 스웨터가.


언니의 삶이 부디 안전했기를 (하기를) 빈다.

다정했던 어머니의 얼굴에도 덜 주름이 져있기를.




https://www.youtube.com/channel/UCYYwZ2SU0yKEIWq17ayyF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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