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만화 Nov 07. 2020

회사에서 어려운 사람 대하는 법

회삿밥 10년 먹게 넘은 어느 과정의 성장기


살다 보면 어려운 사람 투성이다. 가족도 어렵고 친구도 어렵다.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가 있다. 우리는 15년간 매년 서로의 생일파티를 챙기는 사이였다. 그런데 분명 편했던 친구였는데, 언젠가부터 대화가 겉돌고 어떤 질문에는 불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의 사적인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는 친구의 질문에는 지금의 나는 없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랑 잘 지내?"

"응. 왜?"

"아니, 얘기가 없어서 헤어진 줄 알았거든."

"별 다른 얘기 없었으면 잘 만나고 있는 거 아닐까?"


정말 기함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사이가 좋고?"


당시 우리 부모님은 말년에 대차게 싸우고 있었다. 전화로 서로의 흉을 보는 것을 들어주던 나는 '저러다 또 화해할 것을, 왜 이렇게 죽일 듯이 싸우는 거야.' 하며 엄마가 전화하면 아빠 욕을 해주고, 아빠가 전화하면 엄마 욕을 같이 해주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실을 말해주어야 하나, 좀 당황스러웠다.


대체 '여전히'라는 표현은 또 무엇이며, 왜 우리 부모님의 사이를 묻는 건지 친구의 사고방식을 짐작해보려고 해도 알 수 없었다. 황혼 이혼이라도 하셨더라면 저 질문에 나는 얼마나 당황하고 말았을까. '여전히'에 담긴 의미를 '여전히 죽일 듯이 싸우지만 여전히 화해하고 둘밖에 없다고 하며 사셔'라고 정정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후 친구는 출산을 하게 되고, 싱글에 개맘인 나와 관심사는 더 벌어지고 말았다.


가족은 말해 뭐해. 지난 추석 때 부모님과 함께 살을 부대끼고 있으면서 느낀 건 사뭇 따뜻하기도 하면서도 '내 부모님도 어려운데, 굳이 내 삶에서 또 다른 부모를 늘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소히 비혼적 사고방식이 훅 들어왔다.


그렇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곳은 심하게 말하면 다 지뢰밭이다.


그래도 따로 살고 있는 부모님과 종종 봐도 무관한 친구들은 조금 불편해도 참으면 그만이다. 참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에너지를 쥐어짜내 버틸 수 있다. 문제는 거의 매일 봐야 하는 회사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면 지옥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신입 때는 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관계는 더욱 어려웠다. 어디서 웃어야 할지, 어디서 맞장구를 쳐야 할지,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긴장되고,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더 긴장되어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그때는 남자 직원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더 긴장이 되었던 터라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내가 싫었다. 너무나 극명하게 내 속을 보여줘버린 데에서 오는 낭패감과 수치감은 꽤 오랬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 (저 남자는 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젠장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센 사람에 대한 알레르기 있었던 터라 똑부러진 선배 앞에서 그야말로 얼음이 되어 내일 연차를 쓴다는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입사원의 그 긴장을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정없다”, “엉덩이가 무겁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이었는데. 그들은 일에 대한 평가보다 내 리액션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우리 좀 웃겨봐~ 그게 막내에 역할이라고~'

이런 기대에 가득찬 눈들을 보면 더 주눅들었다.


그 기이했던  막내 포지션은 내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이직도 하고, 환경도 바뀌게 되면서 서서히 과거 속에 묻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속한 우리 팀에는 두 명의 팀원이 있다. 한 명은 나보다 우리 회사를 오래 다닌 과장님이고, 한 명은 이제 갓 회사에 입사한 신입이다. 과장님은 대개 바로 '그건 안 돼요' 하는 반응을 보여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고, 신입은 그녀의 일을 하나서부터 열까지 챙겨주어야 해서 정신줄을 잘 잡아야 했다. 내 일이 많을 때는 날카롭고 예민해지곤 했기 때문에.


내 삶과 내 시간이 가장 소중한 1인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1인분의 역할만 하면 잘 수행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던 내 오피스 라이프는 생짜 신입과 함께하면서 그녀에게 (그래도, 가능한 선배로서) 적어도 좋은 직장관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몸소 구르며 배운 것들을 가끔씩 이야기하곤 한다. (문득 너무 꼰대 같네 ㅋㅋ)


내가 오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잘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아래의 일들을 할 때 무척이나 유념한다.


메일쓰기가 하등 상관없는 셀카...로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에 하나는 메일 쓰기다.


많은 회사가 메일로 일이 돌아간다. 사무직원이라면 일의 시작부터 업무 종료까지 메일을 쓰지 않고 진행되는 일은 가히 전무할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텍스트로 용건이 오고가는 일이기 때문에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용건의 앞뒤고, 어쩔 때는 용건보다 더 많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한 정서를 뚝뚝 흘려놓는다.


용건이 갖고 있는 차가운 온도를 데피기 위해서다.


안부를 묻는 것은 기본이고, 날씨 이야기, 근황, 요즘 내가 빠져 있는 것들 등을 용건에 맞게 편집하여 넣어둔다. 이것을 깨우친 것은 회사 생활 7년차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팀은 1년 만에 50권의 책을 출간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사람잡는) 스케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어떤 한 분이 외주를 맡아서 전체 진행을 총괄했다. 대여섯 명의 편집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그에게 피드백을 전하는 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수라에서도 그분은 항상 감기는 걸리지 않았냐?, 저녁 맛있게 먹어라, 수고가 많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메일을 한 수백 통을 받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분에게 저녁을 드셨냐, 하는 것을 묻기 시작했다.


메일은 거울이다. 내가 쓴 표현과 정서에 맞게 상대방도 회신을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오랫동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작가가 있었다. 성향도 작용했겠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간 일을 하면서 상처(피해)를 많이 받았을 확률이 높다. 그럴 경우에는 당장 책을 내는 것보다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책은 작가님의 저작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자라는 인간 매개체가 믿을 만한 놈이라는 것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용건만 띡 써서 메일을 보내면 끝장이다. 일보다는 상대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의 키가 메일에 숨어 있다.


(간혹 스몰토크를 할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용건만 적어보내기도 하는데, 이럴 땐 꼭 전화통화를 한다.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손가락은 제법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알면 관계는 좀 더 보송보송해질 수 있다. 그리고 관계가 보송보송해야, 이놈의 회사 다닐 만한데?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직장생활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어렵지만 재미도 있고

성가시지만 관두면 허전하고

다니면 다니기 싫고

관두면 또 들어가고 싶은 곳이니까.



메일쓰기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은 천지삐까리이다. 내 라떼는~ 같은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차근차근 좀 더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장애가 있었던 내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