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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Nov 09. 2020

이런 상황이면 이직해야 할 때다

사표는 과감하게! 이직은 느긋하게!

한 회사를 꽤 오래 다녔다. 그 회사를 퇴사할 때 괴이하게 뿌듯함보다는 낭패감이 들었다. 의리로, 오기로, 이만한 회사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버티고 버텼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인정에 목말라 지독하게 버텼던 6년이 내게는 훈장이 아니라 상처였다는 것을 보듬는 데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처음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던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출판본부 전체 워크숍으로 근교로 1박 2일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해가 지고 배가 불러지면 으례 그해 입사한 신입사원이 노래 한자락을 뽑는 자리가 펼쳐졌다. 그 곤욕스런 장기자랑은 언제부턴가 워크숍의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지옥에서 온 외향인인 우리 팀 신입이 달큰하게 취해 씩씩하게 무대로 걸어나갈 때, 카톡 메시지가 하나 띡 왔다.


"나가서, 같이 추세요!"


우리 팀의 수장이었다. 그 메시지를 보는데 얼굴이 붉어지고 곤혹스러운 데다가 불쾌하기까지 했다. 내가 왜 나가야 하는가!! 하지만 그분의 성정을 알기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그러다가 타이밍 놓침)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입의 무대에 난입하여 시선을 빼앗는 이상한 관종 선배가 될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난 지극히 내향인이다) 그래서 신입이 신나게 소녀시대의 "GEE"를 부르고 들어올 때까지 자리 보전하고 앉아 있었더니, 그 밤 카톡으로 듣기 과한, 다분히 폭력적인 메시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내가 자신을 기만했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디가? 왜?


모두가 즐겁게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푸는 밤, 나는 숙소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였다. 그리고 주말 내내 이 사건에 대해 몰입하여 생각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나를 호출한 그녀에게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녀는 난색을 표하며 자신이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왜 이러느냐며 간곡하게 붙잡았다. 주변에 물어보니 모두 자신이 잘못했다고 했다는 변과 함께. (물어야 아나)  딱히 대안이 없었던 나는 슬그머니 사과를 받아주고 다시 회사를 꾸역꾸역 다녔다.


그리고 약 2년 뒤, 나는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출산 휴가를 들어간 팀장님 대신 3개월간 팀장 대행을 하면서, 새벽 퇴근을 밥먹듯이 했다. 그래도 나름 재밌게 일을 했다. 후배들을 챙기고, 원고를 고치고, 회의에 들어가서 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고됐지만 스스로가 퍽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생과 스트레스가 리셋되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이제 팀장님이 돌아올 것이다. 당시 나의 팀장은 나와 동갑이었고, 심지어는 나와 중학교 동창이었다. 배울 점도 많고, 능력 있는 친구였던 터라, 그런 것에 샘이 나거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내내 2인자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졌을 뿐. 그래서 친구가 복직을 앞둔 시점에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수고했다는 말 대신 이상한 인삿말을 듣게 되었다.


"혹시, 00에게 이상한 말 들은 거 없어요?"

"없는데요."

"그래요. 나가서 잘 지내고, 00처럼 돈 밝히지 말고요."

"......?!!!!!!!!!!!!!!!!!! (이게 무슨 개소리인 것인가!!!)"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던 그 주까지도 주말 출근을 불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횡령으로 이후 해고당했다.




회사 후배들과 대화를 할 때 내가 늘 주지시키는 것은 천년만년 이 회사를 다닐 거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정말이다. 천년만년 한 회사를 다니면 성장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뭉개고 앉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직한 회사가 개판일 수도 있고, 막상 팀장이 되어보니 팀원이 되고(맞을 수도)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해봐야 한다. 깨지고 다져지고 부딪쳐봐야 조직 속에 묻혀 있는 내가 아닌, 성장해야만 하는 내가 드러난다.  


그 회사를 대차게 그만두고 지금 회사에 정착할 때까지 나는 두 회사를 더 거쳤다. 최악의 경험을 연신 갱신할 때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제 그만둘 타이망이다! 여긴 아니다!" 그후  나는 미련하게 참거나 버티지 않았다. 물론 버틸 수도 없을 정도로 몸이 정직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두통을 시달리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병가를 내고서라도 꾸역꾸역 버텼겠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자동반사적으로 생긴 것 같다. 그게 살 길이라는. 다시 들어간 회사가 여전히 구정물일 수도 있지만, 고여 있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는 믿음.


왜냐,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니까.


멈춰 있다고 생각하면 선택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또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더더욱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버티며 자신을 망치고 있는 것보다 밖에서 개고생하는 것이 더 배울 게 많다. 세월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운 교훈이다.


고민하고 있다면 더욱 몰입하여 고민하되, 결정은 칼 같이 해내자. 지금이 제일 최악일 수 있다.

이직을 생각하는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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