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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Nov 20. 2020

#05 서울 촌년의 도교 1년 살이

도쿄역에서 길을 잃다 "일본 왤케 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1년 정도 일을 하던 어느 날 내 인생이 멈췄다. 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 쉼 없이 달려 막내작가에서 겨우 서브작가가 되었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바라는 대로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읽고 동경했던 책의 세계와 월급 90만 원에서 겨우 벗어난 현생의 간극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 부모님과의 갈등은 나의 정신을 메마르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내고 싶었다.

내가 바라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불안과 가난은 그 뒤에 생각해보리라.

고민 끝에 마침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일본으로 1년간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올래."


부모님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완곡한 반대였다. 줄곧 올곧게 바삐 열심히 살아내기 바빴던 나의 부모님에게 여유란, 다양성이란 다른 집 이야기였다. (우리 집이 형편이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삶의 형태가 다양하고, 내 자녀가 그들이 바라는 루트가 아닌 곳으로 이탈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뿐) 부모님은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나를 지지해줄 여력을 애써 끌어내 보려고 했지만 아침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봐. 돌아오면 뭐 하게!" 하며 번복하기를 반복했다.


그 말속에 담긴 냉담함에 겁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약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난다면 서로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남기는 것은 아닐까, 무서웠다. 싸가지 없는 나에게도 심연 저변에 착한 딸 컴플렉스가 존재했던 것이다. 선뜻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던 그때 정신적 멘토 같았던 한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를 쓴 현경 교수다. (표지가 현재 리뉴얼되었지만 구 표지를 추억 돋게 가져왔다) 이 책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6년 차인 현경이 '일이나 사랑이나 인생이나 사람이나 다 그렇고 그런 것'라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하고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한 남편이 보수적인 기독교학자(혹은 목사)로 변하게 되면서 결혼 전 충분히 공부하고 결정하여 자신과 잠자리를 한 것을 비난하고, 그녀의 종교관과는 다른 요구들을 하게 되면서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었던 것 같다. (외도도 하셨던 것 같은데 이건 패스)


죽음을 생각했던 그녀가 뉴욕으로 떠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했던 무수한 노력(명상, 요가 등), 그리고 뉴욕 유니온 대학의 첫 종신 한국 여교수가 과정을 솔직하게 담은 책이다. 그녀의 주장은 이랬다. 자신 안에 있는 '여신'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결국은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워할 것이라는. 그녀의 삶에 큰 감명을 받았던 나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녀에게 기어이 메일을 보내 나의 고민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답장이 왔다.


"떠나세요. 지금은 부모님의 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해요. 당신만의 안전한 울타리를 만드세요."


두어 번의 대화를 통해 나는 어렵사리 결심을 굳혔고, 부모님과 서먹한 인사를 나누고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온전히 혼자, 나의 인생을 탐구하고

탐험해야 할 때가 왔다.

두려움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기대였다.

혼자 걸아가는 길에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무엇을 손에 쥘 지 궁금했다.


 




내가 1년간 머물렀던 곳은 도쿄 치바현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었다. (작다고 하기엔 겁나 크고, 조용하다고 하기엔 수도권) 나리타 공항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작은 동네에서 매일 하는 일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일할 (봉사에 가까운) 기관에 9시에 가서 6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는 일은 건물을 지키고, 오며가며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을 맞이하고, 한국어교실이 열리면 교재를 복사해드리고, 요리교실이 열리면 식기를 준비해두고 하는 소박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전철을 타고 도쿄를 나가는 날에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을 받아 돌아오곤 했다.


여기서부터 본론이다. (ㅋㅋㅋ)



대한민국, 그것도 그곳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서울은 가장 커다랗고, 사람도 많고, 복잡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하루는 도쿄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인파와 엄청난 규모의 지하세계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가만 있어 보자, 하고 검색을 해보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4배 가까이 컸고, 인구도 배로 많은 나라였다. 무수히 많은 갈래로 뚫려 있는 구멍 속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일본 직장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쪽으로 스쳐지나갔다. 마치 게임세계에서 동원된 가상의 엑스트라들이 나를 뚫고 통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사람이 많다고?", "이렇게 출구가 많다고?" 속으로 수백, 수천 번을 되뇌고 있었다.


'정신 차려! 촌년 같이 당황하지 말자. 나 이래뵈도 서울여자야!'




두 번째 충격은 서점에 갔을 때 찾아왔다. 내가 그래도 문창과 졸업, 방송작가 출신이지 않나.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죽고 못사는 나인데, 서점은 내 바운더리지, 하며 들어섰는데, 곧바로 책의 종수와 다양성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내 세계는 생각보다 좁고 안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살면서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명의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수 있을까.


출판업계에 오래 몸 담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새로운 책', '세상에 없었던 책'을 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에 도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만큼 시장이 작고, 시장에서 성공하는 작가는 더욱 작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성공작가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으니. 왜냐, 내가 만든 책이 많이 사랑받길 바라는 그 베스트셀러 병 때문인 것이지.


당시 일본에서 느낀 것은 인구가 많다는 것은 책이 더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과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당연하고 지당한 이야기지만 지면이 많으면 당연히 작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작가 많으면 당연히 새로운 책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어마어마한 종류와 종수의 잡지가 놓여 있는 매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여긴 존나 커!!!"




지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교 입학즈음 서울로 상경한 경험이 있는 작가님을 만나면, 혹은 그와 같은 이력을 지닌 작가님이 쓴 책을 보며 그들에게 서울은 나와는 또 다른 서울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마산 출신의 <나는 절대 이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작가님은 '죽어도 서울에서 죽이리라'는 포부를 밝혔고, <아무튼 예능>에서 복길 작가님은 서울 중심적인 미디어를 비판했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 자체가 소외나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공간이지만, 미디어의 극단적인 서울중심주의는 서울에 대한 지방의 식민성을 확대하고 불만을 부추기고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서울에 가야 저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빠지기 쉬운 착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 청년들에겐 그렇게 조성된 미디어의 환경 자체가 삶의 어떤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서울이란 뭘까.

작은데 크고,

다양한 듯하지만 획일적이고,

화려한데 지루하고,

그럼에도 붙어 있어야만 할 것 같고.



일본에서 느꼈던 그 너비와 규모, 숫자에 대한 충격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km' 개념보다는 '몇 시간'의 개념이 더 몸에 와닿기 때문일 것 같다. "거기까지 몇 시간이면 가는데?" 하는 질문을 더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시코쿠현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공항 위치와 숙소 위치를 개판으로 잡아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무려 6시간 넘게 전철을 갈아타며 간 적이 있다. (일본은 신기방기한 게 전철로만 갈아타고 도쿄에서 삿포르까지도 갈 수 있다.) 그 밤, 점점 다크서클이 내려오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미안...'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시야는 여전히 좁은 상태다.

아직도 단위 개념이 아니라

시간 개념으로 규모를 생각하는.

그래서 외국물 좀 먹어줘야 하는데...

코로나는 언제 끝이 날까.


연말에 강릉이라도 가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9HKGbs6dM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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