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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Nov 22. 2020

무라카미 하루키의 궤변

<고양이를 버리다> 환불해주세요 진심이에요


한창 때 하루키의 팬이었다. 나는 그가 만들어내는 친절한 남성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마치 여성들의 Q&A 테스트에 백점 만점으로 통과한 이들처럼 하나 같이 온순하고 상냥한 답변을 내놓는 남자들.


박력은 없지만 무리는 없는 타입들이랄까.


특히 <상실의 시대>에서의 와타나베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등장하는 쓰쿠루가 그러했다. 나는 특히 후자의 캐릭터를 연모했다.


물론 그가 쓰는 에세이도 너무 좋아했다. <먼 북소리>의 나른한듯 열정 없어 보이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지식인인 인간 하루키를 얼마나 동경했던가.


그래서 꾸준히 그의 구간과 신간을 사모았는데 이번에 나온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당혹감과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리어 너무 화가 나서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분개심이 들 정도였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을 13,500원에 판매하는 것은 저작권료를 터무니없게 높게 주었을 터이니 출판사의 사정을 감안하여 지적하진 않겠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근본적으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과 공개된 서너쪽의 페이지와 달리 이 책은 특이한 관점으로 가족을 회고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그는 고양이라는 전무후무한 사랑스런 키워드를 빌려와 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애매하게 서술하는 데의 책의 대다수를 할애했다.


(욕 나옴;;)


그것도 좋다,,,치자.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그의 역사의식이 지극히 ‘아몰라’, ‘모르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에, 이걸 읽고 대체 뭘 느끼라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 문제인 거다. 물에 술 탄듯, 술에 물 탄듯한 관점은 전쟁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잔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가?!!


그의 인생에서 개운하지 않은 부분을 뭔가 털고 가고 심산인 듯, 한번은 짚고넘어가자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적은 사변적인 글 같다고 하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또 일본에서나 읽어야 될 법한 책이 여기까지 건너온 것은 덮어놓고 하루키면 된다는 그릇된 판단 때문이었을까?


고양이를 버리는 일화는 단 두쪽 정도로 짧게 끝나고 아버지에 대한 본격적인 회고가 시작되면서 아버지의 참전 기록들이 공개된다. 그 가운데 문제가 되는 대목들이 여럿 눈에 띤다.


-매일 아침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경을 외는 것

-난징 대학살을 난징 공략전이라고 서술한 점

-난징 대학살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장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그릇되어 보임)

-전쟁 중에 포로로 잡힌 중국인이 처형되는 와중에도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여 감동했다고 했다는 아버지의 얘기랄지 (첨부된 사진은 그 얘기를 하면서 첨언된 자료인데 저걸 왜 넣은건지...)

-버마 작전 중에 아버지가 죽었다면 자신을 없었겠지 회고하는 내용이랄지...



보는 내내 그 전쟁터 어딘가에서 위안부로, 포로로, 인부로 끌려가 있을 분들이 자꾸 떠올라 나는 이 책을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전범 국가의 작가가 전쟁을 말할 때는 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 독자들은 대체 이것을 읽고 뭘 느끼라는 거죠? 하루키에 묻고 싶다. 이제 하루키와의 인연은 더 이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가는 길이

가능하다면

환불 좀 해주실래요?



(과연, 중국은 이 책을 수입했으려나... 월욜에 찾아봐야지)



*출판사 편집자로 종종 글을 쓰고 왕왕 영상 편집을 합니다.

https://youtu.be/9HKGbs6dM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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