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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운 May 03. 2024

공자가 난세를 바라본 시각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史記』에 묘사된 것에 의하면 '제후들이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예를 쓰는가 하면, 심지어 대부들도 천자와 제후의 예를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였 공자사상과 군자의 책무 |225 다. 그리고 이러한 여파가 사서인(庶人)들에게까지 파급되어 각자의 본분을 지키지 않아 미곡은 부족하고 사치품은 넘쳐났으며, 권모술수가 판을 쳐 자신의 도리를 지키고 이치에 순응하는 자들은 기한(寒)의 근심을 면치 못하는 사회'였다. 공자는 『논어』「자로」편에서 임금이 정치를 하게 하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자로의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이름이 바로 서야 말과 일과 예악과 형벌이 순조로워져 백성들이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전국의 혼란한 시대상이 주례의 붕괴로 인한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 서 이러한 혼란은 주례를 부활하고, 임금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본분에 충실 하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공자는 난세를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식 차원이 결부된 총체적인 문제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난세의 원인은 천자 혹은 대부 등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사회의 구조적인 질서와 함께, 문화적 퇴폐까지 포함된 때 문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공자의 말을 종합하면,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마음인 仁을 수양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주나라 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공자나 공자의 제자들의 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행동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서 공자는 그 시대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사회개혁운동을 주장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때문에 제후와 대부들이 공자를 기용하기를 꺼렸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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