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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운 Sep 09. 2024

돈이 얼마나 있어야 만족스러울까? 부자의 조건

은퇴 4

남성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9천 만 원 정도고, 여성은 그보다 좀 낮다는 뉴스가 있었다.(https://naver.me/502Jqmbf)  기사의 취지는 남녀의 연봉 차이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데 나는 연봉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데서 놀랐다.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지는 정확히 기술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괜찮은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나 보다.


우리나라 1인당 GDP가 대충 3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한국 GDP 순위 12위 유지…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30위권 | 연합뉴스 (yna.co.kr)) GNI라고 국민총소득이라고 하던데 국민 생활과 밀접한 척도를 계산한 것이라고 하니 국가별 비교에 가장 최적화된 수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4인 가족의 경우 대충 12만 달러를 1년에 벌어야 하는데 원화로 치면 1억 5천만 원정도일 것이다. 우리 집안 사정을 비교해 보면 택도 없는 수치인데, 나처럼 평균을 깎아먹는 사람을 보충해 주는 만큼 많이 버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문제는 생활 수준이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연봉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2천만 원이 안 됐을 것 같다. 매달 실 수령액이 100만 원을 오락가락했으니까 세금을 제하기 전에는 대충 2천만 원은 됐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내 연봉은 우리나라 GNI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 수준의 연봉으로 생활을 하려니 쉬운 게 없었다. 기저귀나 분유를 사는데 한참 걸리는 데다 가격을 보고 분유를 먹인 덕에 애들이 어떤 분유든 가리지 않는 먹성이 형성된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데 쇼핑몰에 갈 때마다 나는 곤혹스러웠다.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부를지 고르는데 한참 걸리듯이 물건 가격을 한참 공부항 후 본격적인 쇼핑을 했기 때문이다. 젊을 때 배워 두어야 좋다는 테니스니 골프 레슨이니 하는 것은 꿈만 꿨고, 그 와중에 집을 사야겠다는 의지는 충만해서 걸음마하는 애들과 임장을 나들이 삼아 다니던 기억도 난다. 그때 한 가지 정말 아쉬운 소원이 있었다면 한 달에 100만 원만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의 이런 말을 들은 선배가 그 소원은 월급이 아무리 올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 말이 맞는 것이 지금 월급이 그때의 몇 배인데 아직도 100만 원이 아쉬운 건 마찬가지라는 점 때문이다.


어느 날 성인인 아들이 중학교 때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메이커 파카를 입을 때 자기는 안 사줘서 못 입었다는 것이다.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긴 하지만 메이커 신발을 신고 싶었던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브랜드가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안 먹힐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애가 아주 차분하다고 알고 있었던 우리는 부모로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서 잘 알아듣고 이해한 줄 착각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게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데 일단 놀랐다. 그리고 애들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이 이렇게 다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더 놀랐다. 그런 서러움 때문인지 대학에 가자마자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비싼 옷과 운동화에 쏟아붓는 모습을 봐야 했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내 관념도 여지없이 깨졌다. 공부보다 돈이 우선이었고, 최신 아이폰이 정체성이었다. 이런 건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느낌으로 안다. 아니나 다를까 집이 내전 상태이다.


고향에 잘 나가는 사업가 친구가 있다. 중견 기업가로서 석탑훈장도 받고 웅장한 건물도 가진 친구이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얼핏 수천 만 원을 금고에서 꺼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나와는 차원이 다른 친구이다. 그런데 이 친구도 주된 화제는 돈보다는 은퇴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 누가 회사를 맡을 것인지, 애들은 어떻게 건사할 건지, 은퇴해서 뭘 할 건지 등등이 주된 화제다. 평생 남의 일만 해 온 나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자식들과 본인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데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다.


병장 봉급이 하사 초봉을 뛰어넘었다고 난리다.(병장 월급 205만 원, 소위 1호봉 189만 원... 초급간부들 軍 등진다 (chosun.com)) 어떤 게 합당한 대우인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돈으로 평가하는 것은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라 다른 수단보다 객관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면 군인은 어느 정도의 봉급을 받아야 합당할까? 모 회사 노조는 업계 최고의 평균연봉을 받는 데다 자식대에까지 고용이 승계되기까지 한다고 한다. 게다가 그것도 부족하다고 파업도 불사한다. 임금은 그 일을 하기 위해 내가 포기한 다른 일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기회비용은 젊을 때는 적을 것이고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 많을 것이다.

 

유명 브랜드 제품은 이름값을 한다. 적어도 옷은 착용감이 다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누구나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는 그 제품을 구매하라는 유혹이지 광고를 보는 자가 입을만한 능력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차, 좋은 옷을 가지고 좋은 집에서 우아하게 사는 것은 로망이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다. 내가 그리 살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항변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볼 일이다. 한창때 목숨까지 걸고 싶었던 사안이 지금도 그런지 말이다. 죽고 못 살겠다고 지내던 사람도 한순간에 멀어지는데 하물며 수 백, 수 천만 원짜리 물건이야 오죽하랴.


꽃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있다. 장미의 아름다움이 아무리 부럽다 해도 튤립이 장미가 될 수는 없다. 세상이 온통 장미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장미나 튤립이 잘 뿌리내리는 땅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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