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게 다 음식으로 치환된다.
한창 유행했던 오마카세가 요즘은 한 물 갔다는 평가가 있다.{"요즘 누가 '호캉스' 가고 '오마카세' 먹나요"…지갑 닫고 '요노'된 MZ들 (msn.com)} 가격이 워낙 비싸서 돈이 여간 많지 않고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기다"라는 뜻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셰프에게 식사에 대한 모든 선택권을 맡긴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거금을 들여서 나의 입맛을 만족시키라는 특명을 '셰프'에게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요리사'나 '주방장'보다 '셰프'에게 일임하는 것이 더 신뢰가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골라서 먹는 것보다 주는 대로 먹는 것은 일단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웬만한 입맛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골라 주는대로 먹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내고 음식을 고르는 수고와 음식의 질에 관한 걱정을 내려 놓을 수 있다. 셰프가 받는 돈은 그의 실력과 요리의 수준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된다면 맛과 질, 우아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마카세 제도의 시작은 고급 일식집이었다. 원래 비싼 음식인데다 셰프의 실력에 따라 맛의 차이 가 많이 나는 음식이다 보니 믿을만한 셰프에게 일임하는 것이 식객의 입장에서는 더 편할 수 있다. 이 방식이 인기를 끌다 보니 지금은 다양한 음식점에서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스시 오마카세, 한우 오마카세, 커피 오마카세 등이다. 심지어 이모카세라는 말도 생겼다. 식당 사정에 맞는 음식이 주인 마음대로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엄마카세' 음식을 먹었다. 지금은 '아내카세'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요즘 '독서 오마카세'라는 말도 하는데 어이가 없다. 별 게 다 음식으로 치환된다. 오마카세는 '내가 선택해서 만든 음식을 믿고 먹어라'라는 뜻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마 네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 독서 오마카세는 뭘까? '내가 고른 이 책이 네게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런 작가 스타일이 좋으니 너도 읽어 봐라'인가? 아니면 '네 취향에 맞는 책은 내가 골라줄 수 있다'라는 자신감인가?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니 책을 고르고 읽는 것도 음식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육체의 양식인 밥은 매일 먹는 사람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독서는 매일 하지 않으니 억지로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음미하는 것과 글을 음미하는 것은 음미한다는 말을 같이 쓰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입과 혀라는 감각기관으로 체험하는 것이 고도의 지적인 활동인 독서와 어찌 같이 가겠는가? 음식은 맛을 보는 순간 느낌이 오지만 독서는 한 두 번 읽어서 느낄 수 없을 수도 있다. 몇 날일지 모를 시간을 투자해서 한 두 줄 겨우 쓴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한 번에 이해하랴? 음식에 들이는 노력과 정성이 책을 쓰는 정성과 노력에 비해 저열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데, 비유할 수 없는 행위를 비유해 놓은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독서에 오마카세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매우 거만하다. 세상의 모든 분야를 어느 정도 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면 모를까, 나의 선택을 믿고 따라오라는 말처럼 건방진 태도가 어디 있으랴? 도가 뭔지 모르면서 도를 깨쳤다고 행세하는 사이비 교주만큼이나 철딱서니 없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먹는 것은 죽고사는 문제이다. 요즘은 그 수준을 넘어서 먹기 때문에 문제이지 원래는 그렇다. 반면 글을 읽지 않았다고 죽지는 않는다. 먹는 것과 읽는 것은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다. 먹는 것에 읽는 것을 대입하다 보니 읽는 것도 먹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할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게다가 읽는 것은 쓰는 것과 떼어낼 수 없다. 쓰지 않을 거라면 뭐하러 읽겠는가? 그리고 쓰려고 읽어야 잘 읽힌다.
잘 먹고, 힘을 내서 열심히 읽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