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나온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적자생존이다.
토의 문화에 관한 글이다. 말이 글이고 글이 말이란 내용이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내 생각엔 딱 하나다. 쓰기 싫어서. 이 이유를 빼면 모두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SNS로 소통하는 게 일반화되면서 글을 써야 할 일이 많이 생겼지만, SNS는 오히려 글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환경으로 작용한다. 쓰려면 읽어야 하는데, 그리고 읽은 것을 생각해야 글이 되는데 읽고 생각할 시간을 SNS가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나의 오롯한 판단으로 글을 쓰고 올리는 곳이 SNS일진대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다못해 답글을 올리려고 해도 본문을 읽고 어떤 답글을 달지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SNS의 특징은 쓰는(writing) 공간이라는 점이 될 것이다. 영상이나 그림 등을 올리는 곳도 있지만 글자가 SNS의 기본 수단이 된다. 순식간에 의미를 전달하고 파악하는 것은 글을 따라갈 것은 없다.
어떤 토의에든 달변가는 있다. 나는 달변가가 싫다. 맞는 말을 해도 인정하기 싫다. 아귀가 맞는 논리를 아무리 정교하게 들이대도 와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입으로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어색하고 더듬는 말솜씨더라도 직접 적은 내용을 보면서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는 걸 잘 듣는 편이다. 토의할 때 원고도 없이 자기 말솜씨만 믿고 입을 벌리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으로 여긴다. 토론할 때 원고를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발표할 때 원고가 없는 사람도 위험하다. 토의에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두서없이 쏟아 내는 것은 엄청난 실례다. 듣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고, 그 자리의 질을 떨어뜨리며,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못함으로써 그 자리의 가치를 훼손한다. 듣는 사람은 정제되지 않은 막무가내식의 내용을 정리하느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자기가 말할 내용을 자신의 글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하면 안 된다. 물론 토의나 발표 등 의견이 공식적으로 교환되는 자리에서만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써야 남는다. 읽은 것은 남지 않는다. 읽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말만 하면 의미 없다. 말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大辯若訥이라 했다. 아주 말을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것과 같다는 노자의 말이다. 훌륭한 웅변은 더듬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말을 잘하는 것은 내용이 없을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그래서 쓰는 것도 어렵다. 말하듯이 쓰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을 못 하진 않을 것이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는 잘 쓰는 것, 잘 말하는 것이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는 전제가 있다.
어쨌든 이런 걸 다 뭉뚱그리면 나는 '진솔함'이라고 하고 싶다. 그게 있는 사람은 말을 못 해도 잘하고, 없는 사람은 말을 잘하지만 못하는 것이다. 그런 토의를 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