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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도전은 욕심이 아니다

삶에 대한 책임

by 혜운

나이 들고 박사학위를 하겠다고 나선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이제 와서 무슨 공부야." "그냥 편하게 살지."
"명함 하나 더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1년에 박사가 1만 5천 명도 넘게 나와. 그중에 한 명이 돼서 뭐 하자는 건데?"

게다가, 많은 이들이 학위를 '쉽게' 얻으려 한다는 씁쓸한 현실을 곁눈질로 볼 때면, 나는 문득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내가 하는 이 공부가,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다. 내가 가려는 길은 다르다는 것을.


나는 '쉽게' 가기보다 '제대로' 가고 싶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묵묵히, 내가 걸어온 시간의 무게를 안고, 내가 지금까지 생활했던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기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왔던가. 시간과, 사람과, 스스로의 나약함과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긴 여정을 지나 이제야 비로소 '말할 자격'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 먹어 공부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삶을, 지나온 시간을, 그리고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역사학.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핏자국 난 길을, 그 위에 남은 이름 없는 이들을, 그 치열했던 시간을. 그리고 그 역사의 연장선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답답한 건 당연하다. 남들은 다 쉬려 할 때, 나는 다시 배낭을 메는 것이니까. 남들은 다 내려놓을 때, 나는 다시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답답함은 결국 묻는다. "너는 왜 시작했느냐"라고. 그 대답을 알고 있다면 이 길은 헛되지 않다.


"세상은 길을 늦게 나선 자에게 가장 깊은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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