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 또는 기강의 필요
공군사관학교에서 '아직 민간인'인 가입교생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떴더군요. 그런 일을 당한 신입생도, 그런 일을 저지른 재학생도. 학교도 온통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걸 어떻게 이행해야 할까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그냥 해"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고리타분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저는 비록 그 말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고, 어느덧 그게 습관이 된 세대지만 저런 반응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실 요즘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눈치 빠르고 합리적인 그들이 일을 처리할 때는 군더더기가 없어 편할 때도 많으니까요.
다만, 부하 직원이 "이걸 왜 해야 하죠?"라고 물어올 때 가끔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데 난감하긴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 완벽한 설명서가 붙어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랬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에, 우리는 너무나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조직이 운영되는 동력이 어느 개인의 리더십에 의해 나온다면 그 조직은 위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치고,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파도를 치기 마련이니까요. 우리가 규정과 법령, 방침을 만드는 이유는 리더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조직이 '항구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딱딱한 '틀'이 있어야 조직원은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비로소 정해진 시간 외에 '나만의 시간'을 설계할 자율성을 얻습니다. 이런 경우에 규제는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는 셈입니다.
흔히 '군기'라고 하면 서슬 퍼런 강압을 떠올리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군기는 조직을 살아있게 만드는 '정신적 가치'입니다. 요즘 군대에서 명령 불복종이 트렌드라는 농담도 들리지만, 실상 명령의 타당성을 따질 시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여유롭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 고민하지 않고 루틴을 따르기 위해서는 압박이 필요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지요.
운동하러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지만, 가지 않아도 될 이유는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오늘은 피곤해서", "날씨가 안 좋아서", "어제 많이 움직여서"...
군기는 바로 운동하러 가기 싫은 이 '수십 가지의 핑계'를 끊어내는 힘입니다. 모든 여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조건에서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은 오직 잘 다져진 기강에서 나옵니다.
어려운 사정을 이해받고 타협하는 순간은 달콤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개인도, 조직도 한 뼘 더 성장합니다. 군기는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동력입니다. 하나씩 극복하다 보면 대나무처럼 단단한 마디가 내 안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냥 해!"라는 말은 어쩌면 무책임한 강요가 아니라, 때로는 수많은 잡념을 뒤로하고 본질에만 집중하라는 가장 명쾌한 주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