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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20. 2024

[30대 대장암] 12.대장암 환자의 임신과 출산

보통의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

대장암환자의 임신과 출산, 그 지난 1년에 대하여 느낀점을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22년 11월에 수술을 했고, 23년 2월까지 항암을 진행했다. 항상 생각하는 거였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암중에서도 가장 다행인 암을 빨리 발견했고, 항암도 가장 낮은 단계로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게 숙제처럼 남아있었던 임신과 출산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해서 항암이 끝나고 4달 후에 시험관을 진행했고, 다행히 한 번에 되어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장암 환자의 임신과 출산한마디로 요약하면


힘들어요


세상의 그 어느 임신과 출산이 힘들지 않겠냐만, 난 진짜 너무 힘들었다.


느낀 점 몇 가지 적어보자면,


1. 수술부위 자극​


일단 수술부위 자극이 안 될 수가 없다. 난소와 자궁, 대장은 서로 비슷한 위치에 있어서 자궁이 커질수록 영향을 안 줄 수가 없다. 특히나 대장을 25cm정도 잘라낸 그 빈공간이 유독 콕콕 찌르듯이 아프고 압박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병원가서 물어보면 원래 그럽니다 라는 대답밖에 안돌아와서 그 대답이 가장 훌륭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날들이었다.


2. 엉망진창이 된 식습관과 그로 인한 재발 공포​


 임신을 하니 그동안 안먹던 거 다 먹고 입덧을 하니 뭐라도 먹어야겠다싶고 대장에 안 좋다는 것들 술 빼고 다 먹은 것 같다. 그래서 임신기간동안 20kg정도가 쪘었고 당연히 내 대장은 힘이 들었을것이다.

 식단관리를 처음에는 하다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는데, 고탄수, 고지방, 고단백, 고열량 고당의 음식들을, 안 먹다가 한 번 먹기 시작하니 너무 맛있고 또 배가 안아프고 살만하니 계속 먹었다. 요양병원에서 맞춰온 식습관들은 다 사라져 버렸고 덕분에 콜레스테롤 수치는 올라갔으며 대장에 기름기가 끼여서 용종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공포가 있으면서도 한 번에 고쳐지진 않았다. 임신 후기가 되어서야 당을 좀 줄이고 나름의 관리를 했던 듯하다.


근데 정말 다행이었던 건, 변비는 없었다는 거다. 이게 장이 짧아진 탓인진 모르겠으나 마구 먹어도 딱 세개만 지키려고 했다. 유산균 먹기, 물 많이 마시기, 걷기.

대장암이 예측이 가능한 암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정말....


3. 아이에게 줘 버린 가족력​


이건 심적 문제긴 하다. 그리고 이게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기는 엄마가 대장암이어서 가족력을 가지게 되었다. 어휴 이번에도 대장암이라 어찌나 다행인지.

여기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보험 들어주고, 20살 넘으면 대장내시경 2년마다 하게 하는 것 뿐!

질병앞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4. 임신 자체가 기적​


사실 항암을 하면 가장 큰 문제는, 생식기능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특히 남녀 불문하고 정소와 난소의 기능 감소를 우려하는데, 그래서 항암 전에 시험관 시술로 미리 냉동수정란을 만들어 놓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리 만들어놓은 수정란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약한 항암이라고 하지만, 항암은 항암이다. 항암제는 진짜 독하다. 사실 난 아직도 항암제를 투여했던 왼쪽 손등이 시큰거린다. 만약 미리 만들어놓지 않았더라면, 임신과 출산이 금방됐다는 보장은 할 수 없을 듯하다.

 물론 이것도 사람따라 달라서 금방 되는 사람은 또 될 것이니 혹시 임신을 염두에 둔 암환자가 있다면 너무 걱정은 안했으면 한다. 어차피 될놈될..



 이렇게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임신 출산을, 너무 늦지 않게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임신시도도 확인도 엄청 애태우고 조마조마해했다. 결과 한번 들을때마다 피검하고 기다렸는데 보통의 부부는 임테기 한번이면 족하다는걸 알고 많이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그래도 좋게 결론이 나서 다행이다. 이것에 대해 우리 엄마가 가장 마음을 놓은 듯하다. 나보고 저거 제대로 살겠나 싶었을 텐데.


신생아인 아기에게 수유하느라 좀비처럼 있지만 이 시간이 감사하다. 좋은 시간도 힘든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내가 좋은 걸 보고 좋다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좋은 걸 보고 좋다고 많이 느끼고, 힘들어도 힘든건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절대적인 시간 앞에 나의 마음가짐만이 내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구나.  


이제 다음달이면 수술 2년 만에 전체 스캔을 하러 간다. 요 직전에 진료를 갔을 땐 임신으로 인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다고 했다. 다음 진료 전까지는 열심히 아기를 키우고 몸관리를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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