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변의 서재 Nov 28. 2021

퇴근일기 5. 변호사는 선비인가요, 장사꾼인가요.

어렵다 어려워 돈 얘기, 호갱변호사의 수난.

6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자,

11월 한 달 동안 재판, 구치소접견, 상담, 수임료 조정 등 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들이 쏟아졌다.


다양한 사건을 기록으로 접하고 침착하게 서면으로 풀어내는 경험은 많이 해보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고 말로 설명하는 경험은 서툴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그중 사건 상담이 제일 힘들었다.

나는 변호사인데, 내방자들은 판사의 의견을 물어왔고,

명쾌하고 확신에 찬 결론을 기대했을 테지만,

나는 모호한 말들로 그들을 실망시켰다.


그치만 말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느껴지는 요즘이기에, 가볍고 알량한 말들로 순간을 모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얄팍한 자신감으로 청산유수 같은 말을 내뱉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이제는 안다.


명색이 변호사인데, 도저히 호객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말과 표정이 상대방에게 그다지 신뢰를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절정은 돈 얘기이다.

그래서 수임료는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나는 당당하지 못한 태도로 아주 큰 액수를 말한다.

그리고는 왜 수임료가 그렇게 비싼지 해명이라는 걸 한다.

흥정이 시작되고 나면, 나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헐값에 사건을 맡아 고생해보고, 그제야 수임료에 엄격해지는 것이 초보변호사들의 통과의례 같긴 하지만,

소위 선비처럼 공부만 해오다가 장사꾼처럼 흥정이 오고 가는 그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손님도 아닌 내가 호갱이 된다.


p.s. 정신 차리고 나니 수임료는 깎여있더라.




작가의 이전글 퇴근일기 4. 단순한(위험한) 호기심으로 마약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