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기록이 되고, 생존의 언어가 '하소연'이 되는 이야기
변호사가 없으면 감정밖에 없다
법은 증거와 절차로 말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겨우 개인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마저도 1심에서 패소한 뒤
이제는 준비서면조차 혼자 써야 했다.
혼자 법정에 서면,
판사는 내 진심을 하소연으로 여겼다.
그러나 나는 감정으로 싸운 게 아니었다.
감정밖에 남지 않았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감정이라는 이름의 기록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말한다.
“너무 감정적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이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작성한 서면들은
논리보다는 진심에 가까웠다.
법이 외면한 시간,
그날 나와 아이가 어떻게 견뎠는지를
기록해 둔 것이었다.
감정이 죄가 되는 사회
판사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
말을 더듬어도 안 된다.
옷차림이 흐트러져도 안 된다.
나는 매번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흰머리를 염색할 여유도 없었고,
작아진 아이 옷을 물려입고 재판에 나가는 날도 많았다.
질서 있고 단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법정 앞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니 결국, 내가 가진 건
감정뿐이었다.
엄마의 말은 감정으로만 들리는가
세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말했다.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고.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그 말들은 모두
논리가 아닌 감정의 말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감정은 곧 ‘비이성적’이라는 낙인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말은 왜 늘
‘하소연’이나 ‘감정’으로만 읽히는가.
나는 감정을 가지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무거운 법정에 나간다.
그곳에서 나는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지 아이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있다고 해서
내가 틀린 건 아니다.
감정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도
끝까지 말하고, 기록하고, 살아내고 있다.
감정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 감정을 지우라는 말은
내 삶 전체를 지우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오늘도 감정이라는 이름의 펜으로
이 진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