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눈물은 누가 책임지나

“나는 삶을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에도, 아이를 붙잡았다.”

나 홀로 소송은 삶을 무너뜨린다
나 홀로 소송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생계를 접고,
일도 줄이고,
집중해서 서면을 써야 했고
재판에 쫓기듯 하루를 살아야 했다.


처음엔 1심에서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금방 끝날 거야.”
“금방 끝내고, 다시 시작하자.”

그게 아이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말마저,
3년이 넘은 지금은 입 밖에 꺼내기조차 미안하다.



아이도, 더는 버티기 힘들어했다

아이는 무너졌다.
등교를 거부했고,
몸을 떨며 울었고,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소송 전에는 그래도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중심이 있었다.
엄마로서

나도 아이도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활도, 생계도,
모든 걸 내려놓고
이 소송에 매달리고 있다.


나는 지키고,
아이는 버티고 있다.
그런데,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걸까.



남편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변호사 없이
아이의 눈물,
법원의 문턱,
판결의 숫자와 싸우고 있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다
모성애라면,
부성애라면,
그 삶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누가 진심을 품고 있는지.


알면서도 직업이니까,
알면서도 법이니까,

그게 법이라면,

정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힘 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약한 사람은 희생당한다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약은 사람은 잘 빠져나가고,
힘없는 사람은 희생당한다.”


이건 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리는
억울한 사람들의 공통된 비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붙잡는다
나도, 정말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붙잡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매일 말한다.


지금, 이 기록은
아이와 나,
우리가 함께 버텨낸
눈물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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