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증거가 되지 않았다. 나의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진실하면 알아줄 줄 알았다
내가 미련했던 걸까.
그냥 내가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판사도, 법도,
조금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었다.
나는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흰머리조차 염색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미용실에 아이들은 데리고 가도
내 머리는 몇 년 동안 손질한 적이 없었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내 옷이나 신발보다
아이들 옷을 먼저 살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없는 아이들에게
남겨진 자존심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진짜 엄마로 살아온 내 모습
재판에 출석할 때마다
나는 흰머리에,
아이의 낡은 옷을 입고 법정에 섰다.
내 체구보다 큰 티셔츠,
늘어진 운동복,
바랜 신발,
그게 내 삶이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내가 감당해 온
진짜 시간들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재판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판사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것 같았고
그 뒤로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억울했지만,
조용히 참았던 시간들을
말로 꺼내려 애썼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내가 꺼낸 말도,
내가 보낸 탄원서도,
내가 입고 있었던 그 진짜 현실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3년 동안의 소송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진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오히려 초라한 내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는 걸.
그들은
"저러니 남편이 도망갔겠지"
"저러니 가정폭력을 당했겠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재판에 서게 된다면,
나는 다짐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염색도 하고,
화장도 하고 가야겠다고
그래야 말이라도 들어줄 테니까.
그래야 최소한,
내가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진실을 말하는 데도,
포장해야 겨우 들려지는 세상.
그게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옷을 입었든,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든,
나는
내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증명하는 건
판결문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