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편지
혼자가 익숙해질 만큼,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
결혼은 빨랐고,
이혼을 늦게 했다.
명절 아침.
그리움이 문득 몰려왔다.
“결혼은 늦게 하고,
이혼은 빨리 해라.”
친정엄마의 조언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오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리움들이 하나 둘 마음을 적신다.
돌아갈 곳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이혼이라는 단어를.
연로하신 부모님 곁에서
힘이 되어드리지 못한
철부지였던 내 선택에
책임이라도 지고 싶어서
“잘 살고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집착했었다.
“영아, 언제 내려올래…”
전화기 너머 들리던
친정엄마의 목소리.
그리움은 늘 나를 시험한다.
보고싶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지만
내 발걸음은 친정으로 향하지 못했고
그 후회는
이제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가슴속 메아리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도
딸로서의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잘 살고 있을 거라 믿고 계시길 바랐고,
그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의 임종조차 함께하지 못한 나는
세상 바보 같은 불효를 저지른 사람으로
이 명절을 맞이한다.
경운기를 몰던 아버지,
흙 묻은 장화를 털던 엄마.
새벽부터 과수원과 논밭을 오가며
부지런히 살아오셨던 그 시간들.
추석이 되면 꼭 챙겨주시던
레이스 달린 노란 점퍼,
친정엄마의 몸배바지에
고이 숨겨져있는 줌치가 생각난다.
사라져 버린 그 따뜻한 친정엄마의 품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30년 동안
잘못 채워진 단추 하나가
삶 전체를 비틀어 놓았다.
나는 자아를 잃은 채
아픈 아이들의 엄마로 살았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혼을 미뤘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결혼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명절은
늘 우리에게 없었다.
행복해 보이던 광고 속 명절 풍경은
언제나 우리와는 먼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제는
그 모든 악연을 내려놓고
오롯이 ‘나’를 향해
이야기를 다시 써보려 한다.
고생한 나 자신과, 결혼한다.
비록 모든 것이 늦었더라도
이제부터는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
명절 아침,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예쁘게 빚은 송편을 건네며
속삭인다.
“괜찮아. 잘 버텼어.
이제부터는 너를 위해 살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