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은 있으나, 국가는 없었다.

나는 혼자 싸웠고 법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을 뿐이다.”

요즘 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아들은 오늘도 학교 가기 싫다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조용히 머리맡에 약을 챙겨두고, 물컵을 내려놓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 없이 시작되는 아침.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버텨낸다.


살고 싶다고 몸부림치는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세 살 무렵부터 아빠 없이 자란 아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아빠의 외면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어릴 때부터 감당해야 했다.


아들은 말없이 버텼다.

연기를 하며 선청성 설소대를 극복했을 때도

사람들 앞에 설 때도

엄마 손을 잡고 치료실에 들어갈 때도


아들은 지쳐갔다.

희귀 질환 진단을 받고

아들은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삶은 다시 한번 무너졌다.


남겨진 건

아들의 치료와 학업을 혼자 책임져야 했던

나의 고군분투, 그리고

법과 싸워야만 했던 수많은 날들이다.




가정폭력

폭언과 정서적 학대

자녀 앞에서의 위협


그 모든 장면을 설명해야 했지만

법은 "가혹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은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피해는 '증명되지 않은 감정'이 되었고,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이의 눈물도

긴급피난처 입소 확인서도

복지수급자라는 현실도...

법 앞에서는 '무의미한 참고자료'였다.




전남편은 언제나

배우자인 나보다 부모, 형제의 안부를 더 먼저 챙겼다.


내가 아이 병원비를 걱정할 때,

전남편은 부모와 형제들 곁에 있었다.


결국 나와 아이를 세상에서 고립시켰다.




나는 생활비를 받지 못했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국선 변호사를 신청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았다.


"판결은 이렇게 나는 거예요."

"이건 어차피 기각될 겁니다."


그 말들 속에 담긴 포기의 태도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법이 내 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 상대는 대형로펌을 선임했고

계속해서 보복성 소송을 걸어왔다.


나는 소득도 없이

복지에 의존한 채

민사소송과 가사조정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법은 눈뜬 봉사였다.

"그동안 혼자서 살아왔으니 살만했던 것 아닌가요?"

이 말은 판결문에 버젓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폭력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버틴 것이었다.


법은 고통의 맥락을 읽지 않았다.

증거가 넘쳐나도

증거를 확인하지 않고

말로 모든 걸 잘라냈다.


아이의 학업도

내 삶도

복지로 연명하고 있음에도

법은 그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아직 치료 중이다.

나는 여전히 소송 중이다.


나는 아직도 증명해야 한다.

내가 자녀를 책임졌다는 걸.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버티며 살아왔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나는 더는 법에 기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록뿐이다.


이 기록이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닿아

누군가에게 용기와 생존의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