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에서 소통과 협업 기술 - 사고방식의 차이
이 글은 독일교포신문 1월 기사입니다.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방식, 의사소통 하는 방식을 비롯하여 근무 중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도 자신이 속한 문화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23년간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협업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특히 독일어권 비즈니스 파트너를 가진 한국기업이나 독일회사에서 일하는 한국 직원들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갈 것이다.
(지난호에 이어)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사고방식의 차이”는 업무처리 방식에도 당연히 영향을 준다. 다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현재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직장은 점점 다양한 문화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고 있고 문화 다양성은 풍부한 경험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해야 하거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이 지연되어 오히려 공동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한다. 본 기고에서는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 여러 가지 사고방식의 차이 중 대표적인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고맥락 문화 (high context) vs 저맥락 문화 (low context)
맥락 (context)이란 언어, 행동의 흐름과 연결을 말하는데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의 차이는 서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에서 나타난다. 고맥락 문화는 글자나 말과 같은 언어적 교환보다는 상황과 분위기, 문맥으로 소통을 하는 문화이고 저맥락 문화는 말과 글에 전적으로 기대어 소통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즉 고맥락 문화의 의사소통은 주로 말할 때에 제스처나 목소리의 톤, 말투 등 비언어적 단서나 문맥, 혹은 말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고맥락 문화의 사람들은 많은 부분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루시루 정확하게 설명하고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 간의 이해가 잘 된다. 한, 중, 일 등의 아시아 국가 및 중동, 남미문화가 고맥락 문화에 해당한다.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화권의 사람들은 서로 암시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관계를 강조하며 비언어적 단서에 의존하여 소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 문화와 같은 고맥락 문화에서는 모든 소통을 문자나 말에 의존한다기보다 상황과 소통의 분위기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기분이 달라진다는 우리말 속담인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와 같은 고맥락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을” 말하느냐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저맥락 문화에서 의사소통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언어 표현에 의존한다. 이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식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 역시 살짝만 돌려 말해도 통하지 않기에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이루어져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북미, 서유럽 문화가 저맥락 문화에 속하며 이 문화권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잘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고맥락 문화권의 구성원과 저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는 의사소통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다국적 기업에서 고맥락문화에 속하는 한국 직원의 의사소통 스타일이 독일직원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독일직원은 명확하고 명시적인 의사소통을 선호하는데 한국직원은 암시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단서에 의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독일직원은 한국인 직원이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것을 회피한다고 느낄 수 있으며, 반면에 한국 직원은 독일 직원의 지나친 직설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개인 간의 문제뿐 아닌 기업과 기업의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기업은 한국기업과의 비즈니스 협상에서 명확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선호하는데 반해 한국 기업은 의사 결정에 앞서 시간을 들여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독일 측은 모든 것이 명시적으로 언급되기를 기대하고 한국 측은 암시적으로 몇 가지 세부 사항만 합의되면 계약이 맺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 측은 프로젝트의 일부가 명확하게 합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독일 측은 더욱 명확한 의사소통과 공식적인 합의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어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갈등 상황이나 서로 비판을 해야 하는 경우에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독일식의 직설적이고 명확하고 공개적인 비판은 한국직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불필요한 논쟁을 최대한 회피하고 타인의 감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받은 한국 직원들은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메시지의 신중함을 중시하기에 간접화법을 써서 말하며 행간의 숨겨진 뜻을 읽어내는 감각이 뛰어나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 직설적인 대화와 갈등을 파고들어 명확하게 만들어내 해결하는 독일어권 문화의 상대와 소통할 때 자칫 모호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심지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2. 연역적 사고 (deductive reasoning) vs 귀납적 (inductive reasoning) 사고
문제해결을 할 때 연역적 사고를 (deductive reasoning) 하는지 귀납적 (inductive reasoning) 사고를 하는지에 따라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연역적 사고는 일반적인 진술이나 가설로부터 시작해서 특정하고 구체적인 결론에 이르는 방법이고 귀납적 사고는 반대로 구체적인 관측이나 증거를 바탕으로 더 커다란 결론으로 일반화해 나가는 사고방식이다. 연역적 사고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상급자가 특정 성과 지표를 충족하는 모든 직원이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김 과장이 이러한 지표를 충족한다면, 김 과장이 보너스를 받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반대로 귀납적 사고의 예시로는 지난 마케팅 캠페인은 성공적이었고 그 캠페인에 다양한 소셜 미디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관찰되었을 때 소셜 미디어 참여가 이 특정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바로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연역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귀납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함께 업무를 할 때 어떤 갈등이 생길 수 있을까? 연역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귀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인 관측을 기반으로 이전에 없던 가정을 세우고, 이로 인해 잠재적으로 결함이 많은 사실을 너무 쉽게 일반화한다고 본다. 반대로 귀납적 사고자는 연역적 사고자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볼 수 있으며, 현실 세계 상황은 종종 엄격한 연역적 사고로는 포착할 수 없는 예외와 뉘앙스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귀납적 사고자는 모호성과 불확실한 상황에서 연역적 사고자에 비해 더 편안하게 느끼며, 불완전한 데이터에서도 패턴과 경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연역적 사고자는 구조적이고 통제된 접근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예측 가능성과 확립된 프로토콜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귀납적 사고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전례 없는 상황에서 전략을 조정하는 것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연역적 사고자는 일관성을 중시하며 확립된 규칙을 준수하며 예측 가능성과 확립된 규칙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쉽게 갈등을 겪을 수 있다.
3. 과거 중심적 vs 미래 중심적
과거 중심적 사고는 과거의 경험, 전통, 또는 업적에 중점을 둔 사고방식을 말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지난 성과와 경험에서 교훈을 얻으며 의사 결정을 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성공 경험에 중점을 둔 과거 중심적 사고자는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기존의 고객 관계에 크게 의존한다. 반면에 미래 중심적 사고는 미래의 가능성과 전망에 주목하는 사고방식으로 혁신과 변화에 열려 있으며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새로운 시장 동향과 기술적 발전을 고려하는 미래 중심적 사고자는 항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한다.
서로 다른 시간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갈등은 비즈니스 상황뿐이 아닌 사화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회사 내에서 과거 중심적인 사고를 갖는 리더와 미래 중심적인 사고를 갖는 직원 사이에서의 갈등은 비일 비재하다. 리더는 기존의 성공 경험에 의존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려는 반면, 직원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통해 미래에 대비하려고 하다 보면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성공 경험에 대한 과신은 미래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기에 과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지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미래 중심적인 팀원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망을 만들기를 원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보다는 능력과 잠재력을 중시하느냐도 서로 다른 시간 지향성의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기업에서 얼마나 신입인력을 받을지, 경력직을 뽑을지 조차 결정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권의 사람들과 효율적인 협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이 기고를 마치고자 한다. 첫째, 자신이 함께 일하는 동료, 파트너, 고객의 문화적 배경과 성향을 조사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둘째, 파악한 자료를 토대로 잠재적 또는 실제 격차를 명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셋째, 그 차이로 인한 갈등과 기회, 또한 그러한 차이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식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갈등을 완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의사소통과 팀을 짜는데 활용해야 한다. 즉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시간과 공을 들여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장려하고 상사가 각 접근법의 장단점을 인식하여 의사 결정 프로세스에 각기 다른 사고를 모두 통합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포괄하는 협업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데에 중요한 것은 뛰어난 언어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얼마나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언어를 아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어나 외국어 능력이 출중하지 않다 하더라도 열린 마음과 자신감 넘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기술과 지피티의 발달로 언어장벽이 많이 허물어진 현 국제사회 간 의사소통에서는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문화차이와 함께 직장동료 및 파트너의 업무 방식에 대해 함께 공부를 해 나간다면 협업과정에서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건설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작가: 루이콜만 (Lui Kohlmann, 1995)
루이 콜만은 브래멘 대학에서 미술학위를 마친 후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현재 한국학 학사를 취득 중이다. (https://lui-kohlman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