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시차적응의 어려움
올초에 50을 깔딱 넘기고 대륙간 이동하여 오랜만에 내 나라 땅을 밟았다. 감개가 무량.
오랜만에 만난 노모는 70킬로에 육박한 딸에게 맛있는 것을 한입이라고 더 먹이려 난리. (오 마이 마마)
오기 전부터 집밥이면 충분하니 일절의 외식 필요 없고 엄마 먹는 그대로 깻잎 반찬에 현미밥만 달라
그리 요청했지만 (당연히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셨다, 암요).
기운 없어 못 차린다 하던 엄마는 여기저기 주변에 딸내미 들어온다 방송을 하시고 다닌 것이 분명 (어제 엄마 손 잡고 책 빌리러 동네 도서관 가는 길에 만난 아파트 주민들에게 우리 딸이라고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사실을 -동네방네 공포하시고
집 냉장고 안은 이미 온 동네 친구분들과 노인정 할머니들의 후한 인심으로 가득 차있다. 나물과 김치 풍년.
요리못알이 독일서 살며 가장 아쉬운 것이 한국식
집밥. 요리사 뺨치게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있지만 독일남편에게 한국식 집밥을 해달라 요청하긴 좀 그렇고 (해달라면 당장 한식요리코스에 등록해 달라며 들들 볶을까 걱정되어 말도 못 꺼내는 사정이 있다)
내 나라 친정집에서 두부, 나물, 깻잎에 현미밥 식사가 꿀맛이다. 자꾸만 십 첩 반상을 만들려는 어머니를 말리기도 쉽지 않아 이것저것 먹고자 애쓰지만 시차 때문에 잠시간이 엉망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는 훨씬 많은 양을 먹을 수는 있지만) 엄마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다.
스르륵스르륵 ~~~ 내가 일어서기만 하면 자동으로 부엌으로 향하시는 울어머니. 무슨 회장님이 해주신 갓김치, 총무님이 사다 주신 딸기, 노인정 식구들이 챙겨주신 고보반찬, 학원 동기분이 해주신 연근 반찬 등등. 디폴트 반찬이 넘치고 넘치는데도 끊임없이 불질해 가며 다른 반찬들을 만들고 계신다. 이쯤이면 사육이다!
갱년기라 그런가 시차적응도 참으로 더디다.
어제 드디어 참고 참다가 8시에 꼬꾸라져 잠이 들었는데 새벽 한 시 반에 잠이 깼다. 조용히 책을 읽다가 3시경에 화장실에 간 것이 화근이었나.
나와보니 내 발소리를 들은 노모가 동태탕을 끓이고 있다. 부글부글 보글보글… 아~~~ 어쩌랴.
어제저녁을 굶고 자지 않았냐며 새벽 3시에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준비하고 계신다.
어쩌겠는가. 현미밥 한 사발에 동태탕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명란이 풍성하게 들어간 (그 알들이 다 부화했으면 수백 마리의 생선이 되었을 바로 그) 동태탕을…
맛있었다. 한동안 알탕이 그토록 먹고 싶어 인스타에 올라온 갖가지 알탕사진들을 보며 침 질질 흘렸었는데
귀국한 지 이틀 만에 새벽 3시에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동태알탕을 시원하게 먹었다.
소주가 팍 땡기는 이른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