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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Mar 13. 2024

아직도 열쇠 꾸러미를?

디지털화 속도

디지털화의 첨단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


내 집 현관을 나서니 엘리베이터가 어찌 알고 15층 사는 나를 태우러 쑥쑥 올라오고 있다. 문이 열리고 몸을

실으면 건물을 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진하면 된다. 그저 문이나 벽에 부딪히지만 않으면 된다.


독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현관문을 열쇠로 연다. 아파트 출입문도, 집 현관문도, 우편함도 모두 가방 속에서 열쇠를 주섬주섬 찾아 구멍에 맞추어 넣고 비틀어 돌리며 무거운 문을 어깨로 밀며 열어야 한다. 그래서 내 가방 안에는 항상 열쇠보따리가 철컹철컹 거리며, 실수로 이 보따리를 놓고 오거나 만취해서 열쇠를 잊어버린다면 대략 난감이다.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대학에서는 트랜스폰더라고 불리는 디지털화된 열쇠를 사용한다. 메탈로 된 열쇠 대신에 플라스틱 안에 전자칩이 들어가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열쇠로 버튼을 눌러 문을 연다는 점에서 열쇠보다는 업그레이드된 물건이긴 하다. 하지만 건물마다 모든 건물의 문이 한 개의 트랜스폰더로 열리지 않기에 강의용 하나, 사무실 용하나 두 개를 들고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집열쇠, 우편함 열쇠, 학교 사무실 열쇠, 학교 강의실 열쇠, 강의실 내의 미디어 함 열쇠에 자동차 열쇠까지… 누가 내 가방 속의 열쇠들을 보면 교도소 교도관인줄 알 것이다. 반려 열쇠꾸러미라고나 할까? 항상 몸에 이 많은 열쇠를 지니고 다닌다.


이렇게 열쇠 사용이 상용화되어 있는 독일에서는 나름 현대식 아파트에 산다 해도 모든 문은 열쇠로 연다. 아파트 주차장까지도 주차장 문을 열 때에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주차장 천장에 달려있는 체인줄을 잡아당겨서 열도록 되어 있다. 리모트 컨트롤도 있지만 제대로 구석기시대의 삶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항상 창문을 열어 체인줄을 힘껏 당겨서 문을 연다. 그래 난 독일에 살지 하며!


그러면 삐뽀삐뽀 소리대신 우르릉 쿵쾅 하며 공동 주차장 입구문이 열리는데 10년 전부터 우리 모친은 이 시스템을 보며 한숨을 쉬셨다. 독일은 참 아직도 메뉴얼 방식을 좋아하는구나 하시며…


그러나 보니 한국 초현대 아파트의 자동화 시스템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이미 엘리베이터까지 자동으로 불려져서 대기하고 서 있다. 오마나 편리한 것. 독일에서 내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가방 안에서 주섬 주섬 열쇠꾸러미를 찾아서 그중 현관 열쇠를 골라 잘 안 보이는 눈으로 구멍에 집어넣어 돌려야 하는데 말이다. 술 먹고 온날은 초점이 안 맞아서 열쇠를 구멍 왼쪽에 한번, 오른쪽에 한번 튕긴 후에 명중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여자 핸드백에는 아직도 안쪽에 열쇠를 다는 고리와 줄이 장착되어 있는 것이 많다. 물론 나는 그런 가방만 산다. 열쇠를 놓고 오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난감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주택에 살면서 열쇠를 잃어버리면 입구를 공유하는 모두의 현관문 열쇠를 바꾸어야 하기에 (열쇠를 주워간 도둑이 현관으로 들어와 다른 가구에도 피해를 줄 수가 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일사불란하게 정보를 착착 제공해 주는 지하철 역의 편리성은 덕국 촌댁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서울 경기권 지하철역 모든 정보의 디지털화와 내가 탈 기차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주는 알림 시스템! (물론 독일에도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진 역도 있고 공기관도 있다. 그. 러. 나. 이렇게 광범위하게 구석구석 어디든지 갖추어 있지 아니하다).


경기도에서 경춘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들어와야 해서 몇 번 지하철을 잘못 탈 뻔했는데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순식간에 검색해서 알려준다. (귀에 아이팟을 꼽꼬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다가도 간절하게 물어보면 너무나도 친절하게 지하철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름다운 청년들이여~~~)


아날로그식 생활방식에 젖어들어 살다가 이렇게 모든 것이 전자동의 혁신으로 들어찬 내 나라에 오니 뿌듯하기도 하고, 편리함의 추구가 만든 이 세련된 환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와 우와 하다가 놀러 온 친구에게 구사리를 들었다. 자꾸 촌티를 내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다닐 것이라고…


그러면서 가만히 이러한 편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관찰해 보았다. 열쇠꾸러미를 꺼내서 돌려 끙끙대는 시간이 절약될 때 대체 인간은 무엇을 할까?


물론 이러한 자잘한 일에 신경 쓰는 대신 대의를 위한 계획을 하고 더욱 중요한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일주일 동안 지하철에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리해져서 남는 시간을 도파민을 분출을 위한 핸드폰 보기에 쏟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렇게 짧은 관찰과 서울에서 경기를 오가며 본 사람들의 행동을 대부분의 사람들 행동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위험하다.


그런데 왠지 모든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가 만들아 놓은 세계에 올인해 있는 모습이 살짝 불편했고, 잡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느껴졌다. 눈부신 발전으로 자동화된 사회에 잉여의 모든 시간을 스마트폰에 쓰게 만든 저력! (물론 일련의 앱 개발자들도 포함이다!)


오는 길에 전철 안에서 김형석 선생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를 읽으며 지하철 안 사람들의 모습을 게눈으로 살피며 왔다. 왼쪽 옆에 앉은 중년의 아저씨의 유튜브에는 야구와 야동이 줄줄이 떠 있고 (훔쳐봐서 죄송합니다!) 오른쪽 옆에 앉은 단아한 아가씨는 한국 드라마에 영어 캡션을 켜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보고 있다. 스마트 폰을 보는 행위가 모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통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임을 배웠다. 그러니  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 역시 도파민 중독으로 폰을 놓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왔다 갔다 하며 관찰한 사람들의 90퍼센트는 스마트 폰을 보고 있으니 지하철 내부는 스마트폰 세상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책 읽는 척하며 열심히 사람들을 관찰하는 중 옆 사람이 내리고 그 자리에 다른 젊은이가 앉아 만화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 후 20분간 나와 그는 따로 또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나도 김형석 선생님의 글로 빠지고 그도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자신이 선택한 판타지 세계에 빠졌다. 쉬릭쉬릭 책장을 넘기다 그는 어떤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그 동행이 너무나 반갑고 즐거웠다.


많은 것이 자동화되어 불필요한 삽질이 사라진 발전된 대한민국! 나도 이렇게 열쇠 없이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면서도 아마도 독일은 그렇게 되면 많은 열쇠장인들이 힘들어질까 하는 생각에 더디게 자동화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전철에서 인간들이 폰 속에 머리를 박고 가는 광경은 독일에서도 별 다르지 아니하다. 다만 한국은 어디에서도 인터넷이 터지기에 사람들이 폰 속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이 빈틈없다는 점이 다르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지하에서도 인타넷이 신호가 다 잡힌다. 이 편리함이 놀랍고 감사하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이 및 어른이들이 너무 많이 쉽게 잠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괜한 걱정이 든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을 때 사람들이 잉여시간을 좀 더 보람 있는 일에 쓰고 그것으로 발생하는 잉여인력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잡스처럼 똑똑한 분들이 좀 더 힘써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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