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번역 수업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에서는 지난여름학기 동안 제주 웹툰 캠퍼스와 협업하여 10명의 신진 웹툰 작가들의 작품을 받아 학생들이 독일어로 번역하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서너 명의 학생들이 한 조를 이루어 작품 한 개를 골라 전체가 아닌 작품의 초반부를 협업하여 번역해 냈다. 그중, 웹툰을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및 프랑스어까지 3개 국어로 번역한 학생들이 있어 그 특별한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다음은 해당 학생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10개의 작품 중 ‘귀문잔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즈데: 저는 웹툰 마니아로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읽어왔는데, 처음부터 이 작품에 끌렸습니다. 한국 역사, 특히 조선 시대에 큰 관심이 있고, 공포 장르에 매우 흥미를 느끼는데 이 작품은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요. 제 입맛에 딱 맞아서 이 작품을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베카: 저 역시 한국 역사와 시대극 스릴러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이 웹툰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내의 풍부한 문화적 배경, 복잡한 플롯, 깊이 있는 캐릭터들이 번역을 하면서 넘어야 할 산이었는데 흥미로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언어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탐구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뻤습니다.
조앤: 공포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물을 좋아하는데, 이 웹툰은 어두운 이야기와 미스터리를 다루어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인간 본성과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탐구하는 서사가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역사 전공 수업에서 관심 있게 배웠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렇게 3개 국어로 번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앤: 우리 그룹 멤버들은 다양한 언어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어 원어민으로 프랑스어 번역을 맡았고, 영어 번역은 독일인이지만 영어 사용에 더 익숙한 레베카가 맡았습니다. 독일어 번역은 우리 세 명의 아이디어와 번역 기술,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공동 작업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작품에서 독일어, 영어 또는 프랑스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들은 어떻게 처리했나요?
모즈데: 웹툰에 사용된 방언들이 너무 생소해서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어에서 파생된 단어들도 어려움이 있었고, 방언은 표준어로 바꾼 후 문맥에 맞는 외국어 표현으로 바꾸는 고민을 했습니다. 직접 번역할 수 없는 구절도 있었기에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조금씩 변형해야 했습니다.
레베카: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은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최종 버전에서는 주석을 제외하고 원문과 가깝게 만들기 위해 문맥적 단서를 통해 독자들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도록 번역했습니다. 원문에 표현된 한국어 표현의 본질을 보존하면서 이야기를 모든 독자들에게 접근 가능하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멤버들과 머리를 쥐어짜면서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테마와 상황별 검색 한영사전’이라는 웹사이트를 발견해서 유용하게 사용했는데요, 물론 검색해서 찾은 후에는 교수님과 조교들과도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최종 변역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함과 창의성이 필요했어요. 대상 언어에서 같은 의미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대화에 설명을 묻어 넣어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3개 국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동시에 도움이 되는 점도 많았습니다. 웹툰을 먼저 독일어를 번역해서 한국어-독일어, 한국어-프랑스어, 한국어-영어 버전 모두를 비교하며 일관성과 정확성을 여러 번 체크하였고 서로 다른 원어민이 함께 작업했기에 서로가 느낀 한국어 의미에 대해 깊숙하게 토론할 기회가 있어서 작업이 흥미진진했습니다.
번역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도구나 방법을 사용했나요?
모즈데: 물론 네이버 사전에서 어휘를 검색해 가면서 작업을 했고요. 문장이나 구절의 문맥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파파고, 딥엘, ChatGPT 등 모든 번역 앱을 총망라하여 장면들을 개략적으로 이해했습니다. 방언의 해결은 교수님께서 도와주셨고 번역에 선택지가 있을 경우 여러 가지 번역 제안을 펼친 후 멤버들과 함께 논의했습니다. 최종 표현이 정해지면 해당 표현을 입력한 후 다시 한번 총제적인 문맥과 맞는지 번역이 자연스러운지 읽어보면서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어려운 점과 재미있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레베카: 가장 어려운 점은 의성어 표현이었고 고어에서 파생된 단어들도 번역이 어려웠습니다. 저희 모두는 한국어 의성어의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탁”, “타닥”, “스르륵” 등의 표현을 독일어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아 그 자연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직접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동작을 해가면서 상황을 재현하고 조원들과 오랫동안 토론했습니다. 의성어는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며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기에, 단순히 음성적으로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목표 언어 안에서 그 소리의 본질을 담아내야 했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다른 그룹의 조원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습니다. 작업하면서 옆 테이블을 보니 동기들이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의자 소리를 듣고 표현하려 애쓰거나 서로 칼싸움까지 하는 등 웹툰에 묘사된 동작을 직접 해가면서 가장 유사한 독일어 표현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웃음).
모즈데: 역사 관련 단어나 고어로 된 단어는 그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현대 언어에서는 직접적인 대응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심층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누나와 언니와 같은 친족을 부르는 용어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모두에서 보통 이름을 사용하여 지칭하기 때문에 번역에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열띤 토론 끝에 최종 결정은 이 용어를 한국어 그대로 유지하되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다만 작품에 나온 “경산댁”만은 "Mrs. K”, “Frau K."로 바꾸었습니다. 인물의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 내에서 반복해서 경산댁이라 불리는 것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모두 어색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외국어 상응 표현이 없는 "초상집" 같은 단어는 의역해야 했고 "원통하다"라는 표현의 깊이를 찾기 위해서 한동안 고생했으며 "관아"를 잘 번역하기 위해서도 교수님과 조교들과 여러 차례 상의 했습니다.
조앤: 역사 관련 표현과 문화 차이로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로 단번에 번역하지 못하는 표현들을 번역해 내는 것이 가장 즐거웠으면서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각 언어는 역사적 맥락의 형식성, 사회적 계층, 미묘함을 표현하는 고유한 방식이 있기에 번역해 내는 것이 복잡했습니다. 원작의 톤과 분위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일은 까다로웠습니다. 또한 특정 존칭이나 관용구를 번역하는 창의적인 방법에 대해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원들과의 협업을 하면서 지속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을 해야 했기에 번역 워크숍 시간 내내 매우 보람 있고 많이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조원들과 단어의 미묘함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번역이 아닌, 한국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세부 사항을 탐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큰 만족감을 갖게 해 준 수업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로 번역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나요?
모즈데: 물론입니다. 이번 번역 프로젝트를 통해 번역 작업에 대한 큰 관심이 생겼고, 처음으로 번역가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역이 정말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는 것과 언어와 문화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없다면 번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는 3개 국어로 번역을 하였고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가 한국어와 워낙 다른 언어이다 보니 번역이라는 과정이 단순히 단어를 다른 언어로 갈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AI는 번역의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번역가 자신의 문화적 지식과 역량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게 되었기에 문화지식이 출중한 번역가는 AI가 절대로 쉽게 대체할 수 없을 것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레베카: 작품의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과 톤과 뉘앙스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번역의 복잡함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는 번역의 초짜였기에 협업이 중요했습니다. 토론을 통해서 항상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 있었고 이런 일을 혼자 해내는 전문 번역가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습니다. 원본 자료에 충실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리고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번역가의 역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문 번역가가 되고자 하는 제 꿈에 불을 붙이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언어의 힘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타문화를 가깝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조앤: 번역 작업이 얼마나 세밀하고 복잡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번역은 단순히 코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귀문잔치 번역은 우리 세 사람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흥미 있었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웹툰작가가 가끔 철자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웹툰은 한국어 교과서가 아니고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 한국어 학습자가 인쇄물의 한국어의 오류를 수정한다는 것은 짜릿했습니다. 사실 이 철자 오류가 작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특정 캐릭터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작은 발견조차도 재미있었습니다. 번역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이를 통해 한국어 어휘를 대확장하고 배운 내용을 복습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원들의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번역하는 동안 너무 재미있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