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중력을 제물로 바친다
방학이다. 너흐므 좋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유튜브 비디오도 넘치게 보고, 오디오 북도 듣고, 산책도 하고, 분갈이도 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논문도 뒤로 팍팍 미루고 채점해야 하는 학생들 기말고사도 그냥 깔고 앉아있다. 너무 오래 빨래 안 해서 누렇게 된 베개보와 베개가 있는데 다시 빨아 쓰려면 세제 한 통 다 써야 할만큼 누레져서 쓰레기통 속에 욱여넣어 버렸다. 해야 할 일 일단 다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일만 한동안 할 것이다. 오늘 본 김정운 선생님의 '재미없는 삶은 무효'라는 유튜브 비디오의 영향인데 이렇게 영감을 받는 것이 맞나? 싶지만 아...게으른게 너무 좋다. 게을러서 할 일을 미루고 있지만 창의력을 기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를 비우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음하하 좋다.
멀티태스킹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는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데 현대 사회(?)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게 나를 놔두지 않기 때문에 글 쓰다 갑자기 메일 체크해서 답변하고 영혼을 털린 후 바로 글 쓰기로 돌아오는 정신력이 아니 되기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으며 정신줄을 잡아보려 하다가 또 다른 토끼굴로 휘말려 다른 글들을 읽기를 매일, 매번 반복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겨 다니느라 트랜짓 하는 비용으로 꽤 많은 집중력을 날린다. 이것을 스마트 폰에 따른 집중력 저하라고 부르기에는 내 지난 과거가 너무 화려하다. 어려서부터 (스마트 폰이 없었을 때에도) 이와 별 다르지 않았다. 10분쯤 책상에 앉았다가 휴게실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다시 들어와 앉으려다 나가서 또 다른 친구들과 놀고를 밥먹듯이 했던 것 같다. 집중은 나에게 언제나 힘든 일이다. 거기에 다만 불을 지른 것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일 뿐이다.
2006년 구글 엔지니어 아자 라스킨 (Aza Raskin)은 기존의 클릭 방법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 사이트에서 엄청난 양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볼 수 있도록 무한 스크롤 (infinate scroll)을 고안해 냈다. 이 디자인은 인간은 원래 '어떤 단위를 완성하려는 동기가 있고 만족을 얻을 때까지 그 작업을 끝내려고 노력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접시가 깨끗이 비워질 때까지 계속 먹는 것 역시 이러한 행위의 하나이다. 알라스, 배 터져도 접시를 비워야 하는 나에게 그냥 이 무한 스크롤은 쥐약이다. 아무리 스크롤해도 끝나지 않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언젠가 끝이 있겠지 하는 착각으로 아래로 아래로 스크롤하게 만드는 설계! 실리콘 벨리의 수많은 천재들은 나를 위시한 사용자들이 그 무한 스크롤의 쳇바퀴에서 빠져나가지 못나가도록 지금 이순간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나는 에헤헤 에헤헤 좋아라하며 그들의 기획물에 지극하게 충실한 노예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 수록 불쾌해진다.
당연히 라스킨은 좋은 의도로 무한 스크롤을 디자인했을 것이다. 효율적인 브라우징과 실시간 콘텐츠를 잘 볼 수 있게 하는 등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하여 클릭에서 스크롤로 전환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한 스크롤이 그토록 중독적인 이유는 볼만한 것이 없고 재미없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라는 착각 하에 계속해서 사용자를 스크롤하게 만든 다는 데에 있다. 아...재미도 없느면서 계속해서 스크롤하게 만들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한 게시물에서 다른 게시물로 19초마다 이동하는데 그때마다 뇌는 매번 도파민에 노출되어 일종의 짜릿한 신경학적 흥분을 경험하게 되고 마약, 술, 슬롯머신 등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소셜미디어에 중독되게 된다고 한다. 19초에 한 번씩 찌릿 찌릿하다니…연애하는 감정이지 않을끼?
또한 앱 크리에이터는 의도적으로 사용자로 하여금 중독성 행동 습관을 유발하려 최선을 다한다. 중독의 형성 단계는 트리거, 행동, 보상, 투자 이렇게 4단계로 훅(Hook)모델이라고 불리는데 이 모델은 중독성 있는 피드백 루프를 생성하여 사용자를 휴대폰에 고정시키고 알림이 표시되면 좋아요나 댓글로 보상을 받게 소셜 미디어를 확인하라는 메시지를 표시함으로써 계속해서 지켜보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브런치 사용자 우리 모두가 자신의 글에 '좋아요'가 눌러지기를 기다리고 그것에 힘입어 또 다른 글을 써서 플랫폼을 가득 채우는 것도 이런 원리이다.
문제는 이 무한 스크롤은 우리의 주위를 산만하게 해서 생산성 손실로 이어지게 만든다. 끝이 없는 소셜미디어의 피드는 아래에 도달하자마자 새로운 콘텐츠의 로드로 채워지고 또 채워진다. 스크롤을 하다가 20분 30분은 금방 날라간다. 오 아까운 내 인생이여...나의 경우 이런 시간은 하루에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틈나는 대로 핸드폰을 손에 잡는데 순간적으로 아주 쉽게 인생에서 2-30분을 그냥 날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감각과부하가 걸린다. 새로운 정보와 영상을 끊임없이 접하다 보니 이것에 압도당하여 스트레스받고 지친다. 최악의 경우 강박에 이르는 중독에 이르게 되어 불안 및 우울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듣기 싫은데 끊임없이 쏟아지는 스토리와 이미지의 폭격은 긴박감과 그러한 정보를 혹시 자신만 놓치게 되는가 하는 누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그만 봐야지, 그만 봐야지... 우리가 의지력을 다지려 할 때마다 화면 뒤에는 우리의 자제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연구하는 실리콘 벨리의 천재들이 있다. 우리는 무료로 소셜미디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의 값진 시간과 집중력을 지불한다.
자기전에 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를 찾기 위해 아무래도 빈약한 나의 집중력을 그 제물로 바쳐야 한다니…뜨악, 참을 수 없다. 갱년기로 인한 집중력의 저하, 소셜미디어로 인한 집중력의 저하... 대체 이게 웬일이냐. 세상이여, 나를 향한 공격을 멈추어 다오. 소멸의 지경에 이른 나의 자그마한 집중력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소셜미디어를 접는다. 인스타그램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