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 문화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다

by 문맹

남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우리 자신이 된다.

Through others we become ourselves (Vygotsky 1997: 105)


내가 우리 문화 (교과서에서 배운 백의민족, 홍익인간 어쩌고 하는 국가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이념이 아닌), 우리 습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면서부터이다. 이 자각은 미국 유학을 거쳐 미국에서의 교직생활을 통해서 싹트기 시작했고 그 후 20년 독일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교류하면서 다져졌다. 즉 내가 어떻게 자랐고 남과 어떻게 다른지 타자의 눈을 통해 배웠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을 통해, 직장 동료를 통해, 이웃을 통해,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길을 통해 나의 생각 패턴이 어떤지, 저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점진적으로 알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타자이면서 완전한 내편(?)인 남편과 아이들의 눈을 통해 무엇이 나를 한국사람으로 만드는지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미셀 자우너의 아름다운 이야기, 'H 마트에서 울다'의 한국어 번역본(문학동네)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셀의 눈에 비친 한국 엄마의 음식에 대한 태도는 나와, 내 세대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어서 무릎을 탁 쳤다. 게다가 미셸은 그것을 너무 맛깔나게 표현하였다.


가족의 끼니는 준비해야겠는데 노쇠한 머리가 아이디어를 제때제때 떠올리지 못할 때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유튜브를 참고하는 것이다. 해외생활하면서 제일 먹고 싶고 만들고 싶은 것은 한식이라 수미네 반찬이란 프로그램을 자주 조각조각 본다. 식사 준비하기 30분 전쯤 배는 고프지만 귀찮은 마음 한아름을 안고, 화면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김수미 옹께서 오늘의 요리에 대한 지령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며 핼쑥해(?) 진 얼굴을 핸드폰에 들이댄다. 내 냉장고 안에 있는 남은 재료로 반찬을 만들게 해 주소서. 그래서 웬만하면 시장에 가지 않고 바로 요리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집 냉장고는 한식을 하기에는 내용물이 항상 빈약한 관계로 수미 옹이 추천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갖춰진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빠진 상태로 요리해도, 적어도 나는 먹을 수 있는, 꽤 괜찮을 반찬을 만들 수 있었기에 그 반찬 프로그램을 한동안 추앙했다.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김수미 씨가 메인 요리사로 나와 함께 출연한 셰프들에게 자신의 요리 비법을 전수하면서 요리 도중 사용하는 계량의 단위를 "이만치", "새 눈물만큼" 등으로 어림잡아 이야기하면 메인 MC인 장동민 씨가 끼어들어 셰프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계량의 단위를 "밀가루 반 컵 정도 넣으셨습니다" 혹은 "고춧가루 한 꼬치 넣으셨습니다" 등으로 번역하여 전달해 주던 것이 생각난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요리를 배운 셰프들은 정확한 계량의 단위로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수미 씨는 그러한 계량의 단위를 사용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혹은 가슴속에?) 필요한 양념의 계량이 감각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고 그런 감각을 이용해 해낸 요리의 결과는 어떤 셰프가 만든 음식보다 신비롭고 맛깔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셰프들의 음식도 맛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나 같은 요리못알이 마구잡이로 김수미 씨 같이 넣는다고 그 요리 맛이 날리는 없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감각을 통해서 그런 노하우를 장착하셨을 것이고 김수미 씨의 타고난 미각도 한 몫한다고 본다. 다만 계량의 단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없으셨거나, 혹은 셰프들을 난처하게 만들어야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을 테니 요리 장인의 면모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덜 분석적이고 (적어도 표현에서는) 미셀이 말한 것처럼 더 정서적인 한국적인 요리를 재현해 낸 것이리라.



이 책의 독일어 번역본은 재미있다.

Koreanerine haben einen Hang dazu, Abmessungen abzulehnen und lediglich kryptische Anweisungen zu geben wie ´gib so viel Sesamöl dazu, bis es schmeckt wie bei Mom´.

글자 그래도 번역을 한다면 한국인들은 치수를 거부하고 "엄마처럼 맛이 날 때까지 참기름을 넣어"와 같이 암호화된 지시로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기계 번역한 것이라 투박하기는 하지만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번역가가 쓴 말들이 우리의 이런 문화를 더 과장(?)돼 보이게 만든 효과가 있어 읽으면서 즐거움의 실소가 입가에 흐른다.


쓸데없이 파고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1. 한국인들은 치수를 거부하다 - 아.. 어쩌면 나는 이 카테고리에 딱 맞는다. 무엇을 재는데 별 취미가 없고 숫자 정보를 기억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이것에 완전 반대인 우리 집 아저씨는 무엇이든지 계량하고 재고 숫자로 표현해서 세상을 표현하는데 즐거움을 찾는다.


가끔 자동차를 주차하면서 내쪽으로 가까이 붙을 때 "그쪽 지금 몇 센티미터쯤 공간이 남았어?" 이런 질문을 한다. 이럴 때 나는 찐으로 당황한다. 팔을 벌려 '이 정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순간 센티미터로 전환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한국사람들이 치수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사실이지도 않거니와 (우리나라도 눈부신 공학발전이 있고 훌륭한 공학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치수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 말에 크게 공감하는 것은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한국인들은 요리를 함에 있어 치수를 거부한다 쯤으로 고쳐주면 나와 내 윗세대의 사람들의 경향에 가까워지리라.


어찌 됐든 치수 및 숫자에 대한 이야기는 20년을 거슬러 남편과의 신혼생활에서 내가 찐으로 놀랐던 많은 에피소드 중 한 가지가 기억난다. 많은 신혼부부가 그렇듯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언제쯤 도착하리라는 전화를 반드시 해주었다. 내게 전화해서 "가는 길인데 집에 도착하려면 7분 남았어" 혹은 "13분 후 집에 도착" 이런 전화를 받을 때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5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늘 7분, 4분, 11분 등 내 일상생활 용어사전에 들어 있지 않는 단위의 숫자를 사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남편. 물론 그 당시 내비게이션은 있었다 (아마 20년이 넘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분명하게 시간 표현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게 남편의 그러한 시간 개념 및 시간 단위의 개념에 적응하는 것은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또 하나 적응에 시간이 걸렸던 계량표현 방식 중 하나는 물건의 위치나 남은 공간을 표현할 때 모든 것이 센티미터나 미터로 바로바로 전환되는 그 능력과 방향을 시계방향으로 표현하는 능력 (군대 다녀온 한국분들도 이런 능력 탑재 하셨으리라)이다. 내 뇌 속의 방향은 오른쪽, 왼쪽, 위, 아래가 전부이고 남은 공간을 표현할 때는 그냥 눈대중으로 팔길이만큼 혹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등 직접 내 눈에 보이는 물건과 비교해서 나타내는 것은 되지만 30센티미터가 넘는 길이는 바로바로 도량형으로 환산을 못한다. 남편은 내가 이것이 안 되는 것을 보면서 항상 물어봤다. 초등학교 때 도량형 안 배웠냐고 ㅎㅎㅎ (왜 안 배웠어 미친 듯이 배웠지, 센티미터에서 미터로 환산하고 밀리미터로 환산하고 웬만하면 K학생들은 복잡한 계산의 귀재들이구만...).



다시 미셀의 글로 돌아가 독일어 번역본에서 한국어로 기계번역을 하면서 튀어나온 아래의 표현도 재미있다.


2. 한국인들은 암호화된 지시를 한다 (엄마 같은 맛을 낼 때까지 참기름을 넣어와 같이) - 이 부분은 수미네 반찬에서 이미 여러 번 유머의 코드로 사용된 것이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후 김수미 씨는 장아찌를 만들면서 셰프들을 위해 드디어 계량컵을 사용한다. 평소 '적당히', '이만큼'의 계량어를 사용하던 김수미 씨는 그날 셰프들을 위해 계량컵을 쓰셨으나 계량판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그냥 컵'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면서 계량컵에 간장을 쿨쿨 담으시고 "요 정도만 넣으라"라고 지시해서 셰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게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청양 고추를 넣으면서는 "넣고 싶은 대로 넣으면 된다"라고 지시하였지만 간장과 식초는 "넣고 싶은 대로 넣으면 안 된다고" 장동민에게 호통치면서 "장난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막 넣는 것 같아도 머릿속으로 다 계산하고 있다"라고 답변한다.


이것은 이러한 코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요리를 마음대로 한다고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사실 정확하게 암호화된 지시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만 아는 철저한 계산이 된 요리의 비법을 그냥 아무한테나 줄줄 흘리지 않기 위해 나와 요리 현장에 같이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나눌 수 있는 암호화된 지시. 이것이야 말로 모두가 다 똑같은 요리를 하지 않도록, 가정마다 지역마다 손맛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전통 요리법의 근간이 아닐까. 손맛을 담은 비법을 간직할 수 있는 매우 전략화된 고도의 레시피 전달법이다.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계량의 언어를 사용할지 모른다기보다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려는 열망이 더 커서 암호화된 지시를 하는 유전자가 우성인 종족의 자손! 음식 준비 할 때 감각과 감정에 충실하게 따르며 같은 공간에서 요리하는 사람과 시각적으로 정보를 나누는 음식 문화를 탑재한 종족! 이렇게 은근히 으스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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