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 사우나 즐기기? 견디기?

목욕•사우나 문화

by 문맹

독일 남부 알프스 지역에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건강증진과 웰빙을 모토로 하는 수많은 호텔들이 있다. 대부분이 스키 호텔로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잘 갖추어진 사우나나 수영장 시설 (뜨신 물에 몸 담그고 알프스 산세를 구경하는)과 함께 유기농 상차림을 대대로 마케팅하며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돈만 있으면 매번 가고 싶은 곳들이다. 한 3-4년 전부터 이 지역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심각한 기후변화에 따른 적설량 부족으로 스키장이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호텔들은 스키호텔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그냥 알프스 호텔로 남을 텐데... 아 너무 슬프고 두렵다.

'올해가 스키를 탈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하며 작년 겨울까지 어찌 저찌 운 좋게 스키 휴가를 다녀왔다. 말이 스키휴가지 우리 집은 아이들만 스키를 타고 남편과 나는 (내가 스키를 못 타기 때문에... 알프스의 눈에서 스키를 못 타다니 아쉽기 그지없지만 이번 생에서 나의 운명이다. 스키 못 알!) 설경을 감상하며 산길을 쏘다니다 수영장과 사우나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독일 사우나는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가족들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패밀리 사우나와 성인 사우나 두 종류가 있다. 가족 사우나 시설은 보통 수영장 한 모퉁이에 마련되어 있고 모두 수영복을 착용한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 사우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다. 온갖 유럽가족들과 그들의 언어에 둘러 싸여 고래고래 애들 이름 부르는 부모, 엉엉 우는 아기,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물속으로 첨벙첨벙 다이빙하는 조금 큰 애들까지... 휴가인지 아니면 동네 놀이터에서 베이비시팅을 하는지 정신 못 차리며 보냈었다. 그때는 어서 그 지옥을 떠나 조용한 으른의 사우나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애들이 다 커 아무 걱정 없이 으른의 사우나에 드디어 입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편안하고 자연에 가까운 원초적인 평화를 누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모토로 하는 이곳 호텔 사우나는 남녀혼용이고 수영복 착용을 금지시키는 나체 사우나이다. (물론 수건을 두르는 것은 허용된다). 남들 앞에서 훌러덩 벗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연 친화적(?) 문화에 철저한 개인주의 문화로 남과 남의 나체(?)에 별 관심이 없는 독일인들은 사우나는 그냥 나체로 즐긴다. 혹은 남의 알몸으로부터 관심을 끊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나? 독일인들은 사우나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아주 편안하다.


남편을 졸라 항상 남들보다 일찍 사우나에 가서 모르는 사람을 피해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하면서 사우나를 이용해 왔다. 개장 시간에 그냥 막 들이닥쳐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면 후다닥 몸을 말리고 나가는 전략. 그러나 이것도 한두 번이지 어떤 사우나는 개장 시간을 오후로 미루어 놓기도 한다 - 아침부터 사우나에 오는 사람들은 없기에... 오후부터 개장된 사우나에서 나는 드디어 자연스러운 독일인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건으로 하체정도는 막아주지만 (나는 이들을 수건형 독일인으로 부른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사우나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허가된 일이니 이것으로 시비를 걸 수는 없지 않은가. 사우나의 구조가 서로서로 얼굴 마주 볼 수 있게 디귿자로 되어 있으면 정말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K여인인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선을 멀찍이 놓고 앉아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념치 않을 수는 없다. 사우나 안에서 동양 여자를 거의 처음 볼 텐데 나에게 한 두 번은 눈길이 가지 않을까... 동방 예의지국 여인으로써 원초적인 평화를 누리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내 몸은 수건으로 꼼꼼히 김밥말이를 하고 들어간다.


물론 누구 한 명 나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거나 심지어 상관하는 것 같은 눈 빛을 준 도 없다. 애써 안보기도 하고 사우나 안은 자욱한 안개로 그득 차 있으니... 공중목욕탕 및 사우나란 남탕과 여탕으로 갈라져 있어야 하는 분단 이데올로기에 젖어 살아 온 나에게 혼성 나체 사우나는 경이롭고도 두려운 곳이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남편에게 토로했을 때 그는 나의 마음을 십 분 이해해 줬다. 아랫도리를 열심히 수건으로 말고 들어가는 착실한 수건형 독일인으로써 너무 발랄하게 활짝 열고 들어오는 자유형 인간들이 자기도 많이 불편하다며 나를 다독여줬다.


릴랙~~ 스하려고 사우나에 가는 것 아닌가... 너무 원초적인 모습으로 들어오시는 이들은 나의 정적을, 나의 휴가를, 조용하게 붕괴한다. 괜찮은 척 몇 번하다가 남편에게 커밍아웃했다. 하루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용감한 독일 아저씨의 숫자: 5명! 그 이상의 마주침은 척으로 해결이 안 되니 이제 더 이상 나체 사우나를 가지 아니하겠다고... 그 후로 우리는 돈이 좀 더 들더라도 방안에 작은 사우나 실이 있고 대신 수영장이 없는 호텔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맨 몸으로 남 앞에서 눕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이 자연스러움이 참으로 샘난다. 아저씨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인들도 자연스럽게 사우나에 나체로 드러눕는다. 아무도 음흉한 눈길로 남을 보지 않고 통나무 냄새가 그윽한 나무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어찌하겠는가 20년이 지나도 나에게 이 문화는 스미질 못하는 것을... 부럽긴 하지만 굳이 나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나름 하루 5명까지는 감정의 큰 변화 없이 견딜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장족의 발전이다.


언젠가 독일어 학원에서 사귀게 된 러시아 친구에게서 한국 목욕탕 여탕에 가본 무용담을 듣게 되었다. 그 일화를 듣고 나도 5명의 자연인에게 무너지면 안 되겠구나 반성했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은 한국 여탕에서 샤워기로 입안을 가글 하는 아주머니를 봤다고... 그 아주머니는 같은 샤워기로 위아래 위위 아래아래 다 씻으셨다고.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냥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 정도면 꽤 경쟁력 있지 않은가... K 목욕문화도 만만치 않게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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