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면서 날씨 좋은 한국과는 달리 독일 중부의 하늘은 대부분 구름으로 덮여있다. 쨍쨍 해나는 초여름의 몇 주를 제외하고는 회색 빛 하늘이 한 달에서 두 달, 심지어 석 달까지도 양심 없이 지속되는데 골든 옥토버라고 불리는 10월 초순이 지나면서부터 대놓고 하루종일 흐린 날이 시작된다. 잠시라도 해가 들면 이제야 날씨가 좋아졌다고 매번 기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독일에서 20년이나 살아 놓고도 아직도 사기성 햇살에 속는다고 비웃는다. 그러고 나면 무심한 햇살은 어김없이 3분 안에 자취를 감추어 늘 긍정적이고 싶어 하는 나를 제대로 민망하게 만든다. 쳇, 이번에도 아니구나!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흐린 날이 이렇게 긴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수시로 비가 내리니 불편하다고 생각했을 뿐 한 살 반 차이나는 우량아 둘을 저글링 하며 키우느라 바빠서 하늘을 볼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애들이 다 커서 몸이 덜 바쁘니 하늘을 볼 시간이 생겨서 그런가 회색하늘의 흐린 날씨가 끈질기게 지속되면 우울감이 똬리를 튼다. 그리고는 우중충한 날씨로 바닥까지 가라앉은 기분을 다시 긍정적으로 펌프질 해 올릴 능력도 점점 상실해 갔다. 아마도 반세기를 살면서 근육뿐 아니라 감정의 탄력마저 느슨해졌기 때문이리라. 계속되는 우중충한 늦가을겨울 날씨는 나 같은 중장년 여인에게 위험하다. 내재된 우울감에 휘발유를 끼얹어 검검한 하루하루를 아무것도 하고 싶은 열망 없이 비실대며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해가 나기를, 꽃이 피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아실아실하게 버텨가면서…
2004년. 독일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호기롭게 독일어 학원에 등원했다. 초급과정 코스의 첫날.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독일에 온 지 6개월 된 사람부터 10년 된 사람까지 있었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기에 옆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이용해서 숫자만 바꾸어, 온 지 3일 되었다고 소개하니 다들 놀란다. 그리고 나도 놀랐다. 독일에 와서 1년쯤 되면 대충 기초 독일어 정도는 구사할 수 있을 터인데 독일에서 산 지 5년, 10년 된 사람들이 이 초급코스에서 빌빌대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20년을 독일에 살고도 독일어가 서툰 사람.
도독 당시 나는 젊었고 새로운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과 두려움으로 첫 3개월의 독일어 수업을 정말 열심히 참여하면서 보냈다. 선생님도 나의 놀라운 독일어 습득 속도를 계속해서 칭찬해 주셨고 남편 역시 내가 떠듬떠듬 독일어로 말을 걸면 독일 여자랑 사는 것 같아서 소름 끼친다며 나를 격려해 줬다. 그런 칭찬에 배시시 하며 더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 3개월이 나의 20년 독일 생활 중 (아마도 평생 동안) 가장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한 기간이 될 줄이야... 학원 한 학기를 딱 끝내자마자 덜컥 큰 애를 임신했다. 그리곤 어마어마한 입덧이 따라왔다. 평생 아무리 아파도 입맛이 떨어진 역사가 없는 먹순이. 가리는 것 없이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내가 음식을 보기만 해도 욕지기가 났다. 변기통을 세숫대야 삼아 얼굴을 묻고 사는 날이 지속되었다. 다시 학원에 등록하는 것은 어불성설. 냄새가 나는 그 어떤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다행히 입덧은 수그러졌으나 산달이 벌써 가까워져 배불러 뒤뚱거리며 별 하는 일 없이 무거운 내 한 몸 겨우 건사해 가며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8월의 무더운 어느 날 품고 있던 아이를 세상으로 힘주어 밀어냈다.
출산하던 그날. 첫 아이라 산통이 길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의 목떨미를 끌어안고 살려달라 병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자기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찐으로 당황한 남편은 한동안 나를 달래려다 본인도 지쳤던 것 같다. 내 외침이 기차화통 삶아 먹은 듯 점점 커지자 제발 자기 귀에다 대고 소리 지르지 말아 달라고 역으로 내게 소리를 지른다. 귀가 아프다나 뭐라나... 산통에 돌아버릴 것 같은 와중에도 남편이 혹시 미친것 아닌가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았었더라면 병원을 뒤집어엎어가며 남편을 응징했으리라. 내가 무엇 때문에 이리 포효하고 있는데 어디서 감히 자기 귀가 아프다고 역으로 고함을 지르는가!!!
출산 후 작은 아이를 보고 신기함과 놀라움에 남편의 만행을 아주 잠시 잊고 있다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일단 소심하게 복수했다. 출산하던 날 남편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가위로 댕강댕강 잘라 쓰레기통에 콱! 쳐 넣었다. 사실 쓰레기통에 쳐 넣고 싶은 것은 티셔츠뿐이 아니었으나 애를 혼자 키우긴 버거울 것이기에 일단 셔츠 주인은 살려뒀다. 빠르고 냉철한 계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때 해치웠어야 하나?). 이 에피소드는 평생 남편을 갈굴 때, (39 나노초 동안에 핵분열과 핵융합 과정을 통해 방출된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차르봄바 같은 무기가 되었고 이제 와서 남편은 부끄러움과 후회의 이불킥으로 몸부림을 치지만 때는 완전히! 늦었다. 우리 집 아저씨는 이렇게 결혼 일 년 차에 스스로 강력한 족쇄를 찼다.
큰 애가 6개월쯤 되어 걷기 시작하기도 전에 둘째를 갖게 되었고 반갑지 않은 입덧으로 또 고생을 했다. 첫째 임신, 첫째 출산, 둘째 임신, 둘째 출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성실하고 촘촘하게 인생의 모멘텀을 만들어 가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의 오피셜 한 독일어 습득의 역사는 짧고 굵게 3개월로 막을 내려버렸다. 학원에서의 엘리트 코스프레와 열정은 씀풍씀풍 애 둘을 낳고 키우면서 바람과 같이 사라졌고 꼴랑 3개월 동안 배운 비루한 독일어로 일상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6개월쯤 배웠으면 상황이 좀 더 나았으려나... 3개월이던 6개월이던 자유롭게 독일어를 구사하는 단계에는 오르지 못했을 테니 소용없는 후회리라.
그렇게 두 아이들을 차례로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보내자 세월이 약이라고 겨우겨우 생활 속에서 주워들은 독일어로 서서히 귀가 트이면서 조금씩 대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큰 아이를 입학시키니 등하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다른 학부모들이랑 대화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활발한 성격의 아들은 다른 아이들이랑 쉽게 친구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엄마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당신이 미샤의 엄마냐고 자주 물었다. 그리고는 금세 장난꾸러기 아들내미를 가진 엄마집합소의 일원이 되었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삼삼 오오 모여서 어제는 무엇을 잘못했고 오늘은 또 무엇을 잘못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선생님께 불려 가야 하는가 등을 딸을 가진 엄마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의논하곤 했다. 큰 말썽은 없었으나 오지랖 끝판왕이었던 아들덕에 나는 늘 이 엄마들 사이에 자연스레 끼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그녀들이 어떻게 서로 네트워킹을 하는지 아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부단한 관찰의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엄마들이 불평불만을 통해 맞장구 쳐가며 우정을 쌓는다는 점이었다. ㅇㅇ 선생님이 너무 하지 않는가? 왜 번잡한 아이들을 같이 앉게 해서 더 말썽 피우게 하는가? ㅇㅇ가 ㅇㅇ를 때렸다는데 정말인가?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지 않았는가? 등등 어찌 그리 불평불만이 끊이질 않는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그냥 과묵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며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정말?, 아이고... 어쩌냐, 이런, 그래서?" 등등의 간단한 몇 가지 단어만 돌려가며 친목을 도모했다.
사실 나는 불평하는 엄마들에게 인간적인 관심은 하나도 없었고, 여기에 누락된다고 해서 섭섭한 감정 역시 1도 없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관찰해 본 결과 이런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엄마들은 자식이 문제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기 아이가 선천적으로 좀 더 개굴 지거나 늦게 사회화되는 것에 대해 '본인들이' 참지 못해 분을 품거나 육아라는 것이 자신도 성장하면서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학교와 기관이 자신의 아이에게 맞추어 주지 않음을 끊임없이 성토하는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독일 사람들과 친분을 가질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없는 나를 환영하고 받아주는 이들을 밀어낼 이유가 없었고 나의 유구한 독일어 발전과 독일 사회에의 빠른 적응을 달성해 내기 위해 쾌히 이 그룹에 끼었다. 물론 여기서도 한두 명의 좋은 친구를 사귀게도 되었다.
정말 (echt?), 저런 (schade) 등의 맞장구 표현은 짧은 단어만 말하면 되기에 간단하지만 적확한 시점에 찰지게 발음해야 한다는 것에 성공의 열쇠가 달려있다. 이들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냥 학교의 새로운 행사에 대해 불평하는구나, 누구 아들이 누구를 때렸구나, 화장실이 많이 더럽구나... 뭐 이 정도로만 알아들었고 그냥 차량용 흔들 머리 인형처럼 모두의 불평에 동의해 가며 맛깔스러운 추임새로 그들 틈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 원어민들의 불평불만을 다 알아듣는 것은 독일 산지 20년 된 지금도 힘들지만 그나마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뻔했기에 불평 불만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메소드급 연기의 맞장구 전략으로 비겁하게 독일어 공부를 피해 가며 초등학교 4년을 버텨냈다.
불평불만은 불안한 세계에 소중한 자식을 내놓아야 하는 초짜 엄마들의 독특한 행태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초면에 불평불만으로 네트워킹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날씨나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는 (예를 들어 "I like your coat" 당신의 코트가 마음에 들어요) 스몰토크 (small talk)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서먹한 사이의 불편한 침묵을 깨면서 친절하고 부드러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반면에 독일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불평을 하면서 초고속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그냥 획 하고 건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자. 건너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눈길을 교환하면서 '저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는 시그널을 주고받거나 '저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호로 고개를 절레절레하거나 때로는 어깨를 으쓱하며 떱떠름한 얼굴표정을 지어가며 잘못된 행동이라는데 동의하는 표시를 재빨리 교환한다. 물론 십중팔구, 그중에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있어 큰 소리로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빨간 불에 건너면 안 된다'라고 소리 지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작은 편의가 만족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꼭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고 주변의 사람들은 삽시간에 한마음이 되어 불평으로 똘똘 뭉친다.
이렇게 매사에 불평불만을 달고 살는 독일 사람들이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줄줄이 비 오는 날씨이다. 또 비가 온다고 불평을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자연에 좋은 거야 “ 혹은 "왜 불평해? 넌 솜사탕 아니잖아, (du bist doch nicht aus Zuckerwatte.) 안 그래?"이다. 이 표현이 귀여워 자주 곱씹어 본다. 솜사탕처럼 물에 녹는 것도 아니면서 자연에 도움이 되는 비가 오는데 왜 불평을 하느냐. 맞는 말이다. 나무와 풀,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의 원천인 비가 내리는데 하늘이 흐리다 비가 주룩주룩 온다 불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음... 메가급 불편러들조차도 감사하게 여기는 비와 우중충한 날씨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비로소 이 땅에서 정착할 수 있는 진정한 에너지를 장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타인과 그들의 방식으로 교감하는 요령을 터득하며 살아가면서 낯설었던 말도,실력은 그대로 일진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 이제 이 우울하고 축축한 날씨를 자연의 섭리라 찬양하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되면 이역만리에서 삼라만상을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결론 없는 세상에서 덧없는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세월의 힘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