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묵직한 남편과 새털같이 가벼운 나
남편의 구멍 난 바지 주머니를 투덜투덜되며 꿰매 주었다. 대체 벌써 몇 번째 주머니 바느질인지 모른다. 주머니마다 마다 이렇게 구멍이 나는 이유는 우리 집 아저씨가 너무 많은 물건들을 쑤셔 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일단 주머니 안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은 휴대용 휴지이다. 비염과 알레르기가 심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집안에 있을 때도 굳이 휴대용 휴지를 바지 주머니 속에 욱여넣고 산다. 콧구멍 밖으로 콧물이 흐르려는 조짐이 있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무기를 꺼내 바로 방어하고자 함인가? 휴대용 휴지 이외에도 주머니 안에는 언제든지 가출이 가능하도록(?) 자동차 열쇠, 치실, (거의 꺼내서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반으로 접히는 머리빗, 안경 나사를 조이는 미니 드라이버와 작은 연장들이 들어있는 미니 툴박스, 가끔 유에스비도 들어있다... 대체 왜 집에 있는 날에도 이것들을 호주머니 안에 다 쑤셔 넣고 있는 것인가… 주머니가 괴로움에 팍팍 터져가며 이렇게 울고 있지 않는가...
007 영화를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아마도 제임스 본드는 상대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손목시계, 독침 신발, 호신용 단검, 연막 가스, 조립식 AR-7 소총 및 50개의 금화까지 필요한 물건을 완벽하게 다 갖춘 채로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뒷주머니도 마찬가지다. 한쪽은 필요한 돈과 카드를 넣는 지갑, 다른 한쪽은 옆주머니에 돈이 떨어지거나 도둑을 맞으면 사용할 비상금을 넣는 지갑! 양쪽 엉덩이 주머니가 항상 불룩하고 비상금쪽 엉덩이 쪽이 조금 더 납작하다. 뜨아…
바느질하면서 계속 잔소리를 했다. 이제 포기했으니 다 넣고 다녀도 좋은데 제발 집에서만은 좀 빼고 있자고. 청바지 주머니, 정장바지 주머니, 심지어 집에서 입는 반바지까지 얄팍한 면으로 만들어진 가엾은 주머니들이 이러한 물건들의 하중과 볼륨을 견디지를 못해서 매번 찢김을 당한다. 대체 작업복도 아니고 옷의 주머니를 이렇게 꾸역꾸역 물건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는가? 나는 아주 작은 종이조각 하나도 주머니에 넣게 되면 기회 될 때마다 바로바로 빼내서 제자리를 찾아 놓거나 쓰레기통에 바로 버린다. 비워야지, 주머니를 비워야지, 왜, why, warum, 이렇게 모든 것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가! 답답함에 불받아서 외쳤건만 조용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모두 다 필요하단다. 아이고 복창 터져.
뭐든지 준비되어야, 아니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하는 남편의 습성덕에 옆에서 꿀 빨은 적도 많다. 근데 꿀만 빨고 싶지 21세기 휴일 저녁 오늘 같이 밤늦은 유튜브 시청과 갱년기로 인해 잘 보이지도 않게 된 눈으로 계속 구멍 나는 남편의 주머니 구멍을 바느질하는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하며 살고 싶진 않다 - 바느질을 가르쳐주어야 하나. 남편은 모든 것이 (내 기준에서 보았을 때) 과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집 앞에 잠시 자전거를 타고 나가더라도 점퍼 주머니에는 자전거가 설사 폭싹 주저 앉아도 당장 고칠 수 있는 수준의 연장을 가지고 나간다. 모든 재난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고 안전에 철저해야 하고... 독일문화이기도 하면서 모든 독일인이 이런 것은 아니기에 개인적 성향이겠다.
인터넷 곳곳에는 독일인들의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유머가 돌아다닌다. 여기저기 읽었던 에피소드 중에 영국에서 독일로 여행 왔던 가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4 식구가 공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심하게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고 이 상황이 준비되지 않았던 부부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던 독일 사이클리스트가 멈추어 서서 자신의 배낭에서 응급키트를 꺼내 아이를 지혈해 주고 (그 유명한) 휴대용 티슈로 아이가 쏟은 코피를 다 닦아준 후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물을 주면서 안정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옆에서 징징 짜고 있는 큰 아이에게 쿠키까지 주었다고... 이 에피소드는 독일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끄덕끄덕하면서 읽었다.
훨씬 더한 에피소드도 많다. 우리 딸이 어렸을 때 아파트 옆동에 있는 친구 쥴리아와 단짝이었다. 아이들이 친해지면 주말에 하룻밤 자게 하는 것은 문화공통적인 일이고 흥 쾌한 마음으로 쥴리아를 우리 집으로 먼저 초대했다. 약속한 시간 6시에 쥴리아 엄마가 쥴리아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일단 쥴리아가 여행가방을 밀고 들어와서 놀랐다. 딱 하룻밤 자는데 내가 한국 갈 때 가져가는 여행 가방을 가져왔던데 물론 좋아라 하는 인형들이 잔뜩 들었고, 딸이랑 놀라고 장난감을 잔뜩 챙겨 온 것이라 이해했다. 그런데 그 뒤에 엄마가 낑낑거리고 침대 매트리스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집에도 스페어 매트리스가 있다. 물론 진짜 침대 매트리스 같이 단단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자기에 문제없는 매트리스다. 그런데 이 엄마는 쥴리아가 잘 때 쓰는 매트리스를 직접 가지고 왔다. 옆동에 사니까 이런 수고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이해하려 애썼지만 너무 놀래서 진정이 안되었다. 나중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쥴리아가 가져온 세면가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칫솔, 치약, 플라스틱 컵, 샴푸, 린스, 수건, 얼굴 로션에 바디크림까지.... 다 가져왔더라 우리 집에서 한 달은 살아도 되게 준비해 온 것을 보고 오싹했다. 혹시 애를 나에게 버리고 엄마는 도망가는 것인가... 그 후로 쥴리아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잘 때마다 그렇게 여행가방과 매트리스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는 이 행동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진 것이다).
어딘가 연애 사이트에서 독일 남자 친구에 대해 스페인 여인이 쓴 글을 보고 엄청 공감한 적이 있다. 그 여인에 따르면 남친이랑 공원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함께 듣기로 하고 공원으로 가는 중 그녀의 자전거가 망가졌다고 한다. 독일 남친은 예상했다는 듯이 배낭에서 자전거 공구박스를 꺼내 의연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손보고 목적지로 유유히 갔다고 한다. 도착하고 보니 공원 잔디에 벌레 때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남친이 배낭에서 해먹(그물침대)을 꺼내서 나무에 묶어 주더란다. 해먹에 누워 라디오 드라마를 듣다가 생각보다 재미없다고 불평을 했더니 갑자기 배낭에서 책을 꺼내 주었고 해먹에서 책을 읽다 보니 뒷목이 저려온다 말했더니 배낭에서 휴대용 쿠션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고... 목마르지 않으냐며 배낭에서 물과 맥주를 꺼내 주기까지 해서 당신은 나의 스위스 나이프 갔다고 했더니 자신의 배낭에서 드디어 스위스 나이프를 꺼내며 웃어 보였다고... 이 스토리 아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맞장구의 댓글을 달아놓았다. 나도 이 스토리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우리 집 아저씨를 겪어봐서 안다. 어디 갈 때마다 그래서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다.
사실 독일에서는 이 연습을 초등학교부터 시킨다(?). 바로 입학한 5-7세의 아이들부터 10킬로에 가까운 돌덩이를 지고 다니는 훈련을 받기에 성인이 되어도 짐이 무거운 것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나는 정말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빈가방 무게가 1.5킬로그램에 달하고 가격도 250유로에 달한다. 4년 내내 메고 다니면서 매일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로 깔고 앉아도 끄떡없고 덜덜 거리고 땅에 끌고 다니면서 던지고 올라타고 망가지라고 굿을 해도 튼튼하게 4년을 버티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니 잘 사용하면 4년이 아니라 40년도 끄덕 없을 것이다. 애를 줄줄이 나아서 가방이 망가질 때까지 물려주는 실험을 해 봤어야 하나?
대체 왜 이리 물건을 심하게 튼튼하고 비싸게 만들어야 하는지, 쓸 일이 없어져도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다. 물론 다 쓴 가방은 어딘가에 기증해서 비싼 가방을 사기 어려운 신입생들이 물려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가방 회사도 이 제도를 싫어할 것이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나를 위시한 많은 부모들이 대망과 야망의 역사적인 초등학교 입학식에 자녀에게 남이 쓰던 가방을 메고 가게 하면 미안하고 아련한 마음이 들기에 이 어마무시하게 튼튼한 가방이 리사이클링 되는 일은 슬프게도 주변에서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더 구시렁대자면 교과서는 또 얼마나 들 무거운지 모른다. 초등 교과서를 하드카바로 딱딱하게 만드는 데다가 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플라스틱 포장을 하라고 학교에서 지시한다. 여기에 공책, 필통, 오전 쉬는 시간에 먹는 빵 도시락 및 준비물까지 합해지면 순식간에 가방 무게는 10킬로에 가까워진다. 이것을 초등학교 때부터 짊어지고 다녀서 그런가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한 물건을 바리바리 다 싸고 다녀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양이다.
이렇게 초등시절부터 단단하게 훈련된 독일인들은 뭐든지 지나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을 빠짐없이 포함시켜야 하는 철학을 가졌기에 기계나 자동차 등을 설계할 때 오버엔지니어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수준의 부품을 투입한 독일 자동차, 탱크를 위시한 무기들 모두 오버엔지니어링이라고 지적되는 것이 많다.
생활 속에서 오버엔지니어링을 마주하는 태도도 남편과 나는 당연히 상반된다. 남편은 아들이라는 동지가 있기에 이 영적인 베틀에서 약간의 우위를 점하는데 내 눈에는 별 쓸데기 없는 기계의 지나치게 친절한 서비스에 쌍으로 감동할 때가 그런 경우이다.
번갈아 운전하기 위해 나란히 렌터카 앞자리에 앉아서는
아들: 아빠 이거 보세요. 컵홀더 나오는 모습!
버튼을 누르니 컵홀더가 자동으로 미끄러지듯 올라온다.
아빠와 아들: (동시에) 우와~~~
아들: 컵 사이즈에 맞게 조절되는 거 보세요!
컵홀더에 물병을 올려놓고 조절바로 물병의 지름에 맞게 꼭 조인다.
아빠와 아들: (동시에) 우와~~~
덤엔 더머도 아니고 자동차의 “내보기에” 정말 불필요한 기능들에 감동하고 흥분하며 그 기능에 맞추어 써주려고 노력한다. 아…‘기술이 선도한다’는 말은 이런 때에 쓰는 표현이구나. 완전 불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우리 집 아저씨와 아들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이런 서비스를 익히고 즐기도록 만들며 더 기막힌 용도와 디자인을 세상에 풀어내어 이 서비스 없이 못 살게 만들어 나아 가는 것!
그렇다면 저런 디테일한 설계에 일말의 관심 없으며 자동차는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나 같은 고객은 호구인가? 오버엔지니어링에서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 디테일한 서비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기에 수혜를 받지도 못하며 도대체 왜 제품을 이따구로 비싸게 만드는지 불평하며 어마무시한 자동차 값을 울면서 지불해야 하는 인간. 갑자기 소외감이 들었지만 세상엔 다른 종류의 인간이 많고 우리 집에 50퍼센트의 멤버가 오버엔지니어링에 저리 광분하니 손해는 아니라 친다.세상이 나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니…
오버엔지니어링의 예는 도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공사현장에서의 위험표지- 물론 불편하더라도 안전이 최선이다. 그치만 가끔은 전혀 막아 놓아야 할 이유가 없는 곳을 마치 건물을 폭파라도 할냥 막아 놓기도 하고 아주 작은 구멍이나 앞으로 보수하기 위해 자리 잡아 놓으려 막는 공간조차도 한참전부터 막아 놓으며 어쩔 때는 보수를 다 끝내 놓고도 한참 동안 위험표지를 떼어내지 않아서 행인들의 불편이 길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행정에 대한 불평의 메메는 인터넷에 창궐해 있다.
고층 건물 창문을 닦을 때도 (위의 사진과 같이) 크레인을 불러서 닦는다. 물론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닦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로봇 청소기를 쓰면 되는데 굳이 저렇게 거대한 크레인을 불러 도로를 다 막고 건물 창문을 닦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입이 떡 벌어진다. 아마 로봇 청소기는 사람이 닦는 것처럼 구석구석 빤짝빤짝 닦지 못해서 그러겠지. 아니면 이미 사놓은 저 비싼 크레인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일테니까.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나에게는 왜 이러한 가치의 장착이 되지 않아서 남편의 이러한 점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될까? 문화의 차이, 사회화의 차이가 인생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새로운 세상과 가치에 대한 지평을 넓혀줌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다름을 피곤하게 느끼고 지치면 배움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이리라.
지금 부엌에서 남은 토스트를 얼리고 있는 남편은 또 오버엔지니어링 중이다. 빵을 봉지에서 꺼내 토스트의 장장마다 그 사이에 알루미늄 포일을 잘라 차례로 넣어서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집어넣고 있다. 나중에 꽝꽝 얼어도 한 장씩 딱딱 떼어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 아.
구멍 난 남편의 주머니 삯바느질을 해가면서 나는 삶의 지평을 많~~~ 이 넓히는 중이라고 최면을 걸으면서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