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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Nov 20. 2023

부부 홈오피스 쟁탈기

우리 집 아저씨도 나도 종종 홈오피스를 한다. 해외 출장이 많은 남편은 공항에서도 자동차 운전 중에도 어디든 자리를 깔고 회의할 준비가 되어있다. 심지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CEO와 하는 중요한 미팅조차도 아우토반을 달리다 가까운 휴게소나 주유소 주차장 구석에서 한다. 이렇게 불편하게 일하는 것에 인이 박히다 보니 집에서 업무 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편안한 옵션이겠다.


반면에 나는 홈오피스 수업이 피곤하다. 열기로 바글거리는 교실 수업을 하다가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업을 하면 학생들의 반응 보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데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교실 수업에서 처럼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면서 창문 밖으로 노랗게 반짝대는 은행잎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새로 염색한 학생의 묘한 머리 색을 못 본척하면서 게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찰나도 없다. 물론 학생들 얼굴은 닭장 같은 줌미팅 창에 꽉 차게 보이니 생생하게 표정을 볼 수는 있지만 마이크를 다 끈 상태이기에 분위기를 읽기다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잘 이끌어내지지 않는 반응을 애타게 끌어내느라 작은 오피스 안에서 혼자 온갖 코미디를 한다. 농담도 수업시간보다 더 많이 하고, 애들 이름도 더 자주 부르고, 형편없는 솜씨로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수업의 생동감이 어디 교실 수업만 하랴.


판데미는 끝났지만 계속 일주일에 한 번은 줌수업이 있다. 50명 이상 앉아 있는 열기로 가득 찬 교실에서 침 튀겨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수업을 하다가 컴퓨터 앞에서 마이크가 꺼진 채로 상자 안에 들어찬 학생들의 얼굴만을 보며 수업하는 것은 김 빠지는 일이다. 컴퓨터 딸랑 한대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목소리 조절이 잘 안 되어 50명 이상 앉아 있는 교실 수업과 똑같이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로 강의를 한다. 아마도 불쌍한 내 학생들은 조용히 컴퓨터 볼륨을 줄이지 싶다. 또한 내가 집에서 줌으로 강의하는 날,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남편은 조용히 집안 곳곳의 창문을 닫는다. 남들이 들으면 혼자 원맨쇼 하는 줄 알 테니…


홈오피스로 줌 수업은 이렇게 힘조절이 되지 않아 끙끙대고, 반면에 조용히 앉아서 사무처리를 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는 집중이 잘 안 돼서 끙끙댄다. 특히 남편까지 함께 스트레오로 홈오피스에서 근무할 때 더 신경 쓰인다. 남편은 보통 오피스안에 들어가고 나는 식탁에 앉아서 근무를 하는데 문을 꽁꽁 닫아 놓아도 남편이 회의하는 소리가 부분 부분 들린다. 귀를 아무리 닫으려고 해도 남편이 자꾸 동료들과 싸우는 것 같아 자꾸 신경이 거슬린다. 우리 집 아저씨는 평생 자동차 관련 기업에서 일을 했고 이 업종 종사자들 중 살아남아 C레벨에 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알파 수컷(Alpha male)이다. 자기가 제일 잘 났고 뭐든지 남들보다 더 잘 알고 내가 제일 돋보여야 하는… 공작새들이 모여 근무하는 것 같다. 게다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전혀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독일어권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은 엿듣는 나에게 이중 타격을 준다. 미팅하는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있으면 서로의 의견에 반대하고 으르렁 대기 일쑤다. 알파 남성을 거의 볼 기회가 없는 나의 일터에서는 이런 치열한 갈등의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쥐꼬리만큼 월급을 받나 보다. 가끔 다른 곳에서 뺨 맞고 와서 엄한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종류의 모지리들은 있지만 늘 내가 잘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다행히 눈에 잘 안 띈다.


어찌 되었든 홈오피스를 하면서 훨씬 더 시끄러운 것은 나인데 남편은 나와 함께 홈오피스를 할 때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반면 나는 남편이 집에서 일할 때 내 일에 집중이 잘 안 돼서 전전긍긍한다. 완전한 나만의 공간에서 일하고 싶은데 이물질이 끼어 있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남편을  오피스로 당장 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함께 홈오피스를 할 때는 점심도 같이 먹는데 차라리 혼자 먹으며 외로워하고 싶다. 혼자서 밥 먹을 때는 남편이 가끔 그리운데 말이다. 대체 무슨 심보인가.


남편은 자신이 일 안 하고 놀고 있을 때 내가 홈오피스로 바쁘게 근무하면 점심시간에 즐겁게 점심을 준비해 놓곤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자신이 요리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리고 나를 피해 가면서 혼자서 잘 쉬고 잘 논다. 억울하게도 나는 그것이 전혀 안된다. 점심에 맛있는 것을 차려 놓으라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굳이 점심을 챙거줘가며 허덕거리고 불편해한다.

심지어 남편의 줌미팅 소리와 전화통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말투가 이상하면 나중에 그러지 말라 코치하고 내용 중에 이상한 것이 있으면 묻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내 일도 버거운데 왜 전혀 모르는 남편 회사의 근무 상황까지 알아야 하며 그 알파수컷들의 전화 태도를 지적질까지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우리 집 아저씨가 직장에서 실수하나 싶어 컨트롤을 하는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으르렁 거리며 통화하는, 혹은 전화 통화 끝이 매끄럽게 끝나지 않는 이 긱 집단(Geek)의 의사소통 하는 법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별것까지 오지랖이다 정말. 우리 집 아저씨에 대한 소유권의 주장인가? 아님 집에 혼자서 자유롭게 있고 싶은데 나의 공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남편이 못마땅한 것인가…


남편은 외동으로 자라서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20년 때리고 얼래 가며 많이 가르쳐서 나아졌지만 애들을 키우면서도 형제자매가 왜 싸우는지를 모르고 서로 위하며 우애가 깊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남동생도 있고 사촌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조부모님과 대가족 생활을 해 본 나는 7살 아래의 남동생을 무진장 괴롭히고 함께 살던 사촌 언니와도 박치게 싸우고 편 가르기 하면서 자랐다. 물론 다 어른이 되어서 형제자매 간 우애가 매우 좋지만 어렸을 때 삶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동물행동학에서나 찾을 수 있는 밀림 속의 약육강식의 에피소드들을 넘치게 만들어가면서 자랐다. 그래서 형제자매 간에 싸우고 화해하며 사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면서 사회화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혼자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남편은 혼자 핑크빛 상상의 나래를 펼쳐 형제자매들은 서로 우애 깊고 사랑이 넘치게 자라난다고 생각하는 지라 우리 애들이 싸우면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판정을 하려 든다.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 애들 싸움에 끼어들어서 한 번은 호되게 야단쳤다. 판사질 좀 그만하라고!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고치기 힘들었다. 남편 왈 애들이 싸우면 듣기 싫단다- 흠… 나는 애들이 독일어로 싸우기에 반쯤밖에 못 알아들어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안 됐구려.


이제 애들이 훌쩍 커버려서 서로 보기를 돌같이 하는 나이가 되니 싸울 일이 없어 평화를 되찾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문제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뻔질나게 하던 판사질을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애들 싸울 때마다 남편이 나서는 것이 더 못마땅했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월이 저절로 해결해 줘서.


이렇게 혼자 자라서 그런지 남편은 옆에서 누가 굿을 해도 자기 할 일도 잘하고 놀 것도 잘 놀아서 어쩔 때는 무진장 얄밉다. 나는 끊임없이 남의 일이 궁금하고 끼고 싶은데 이 싸람은 항상 자기 충만하여 남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늘그막에 친구 없으면 안 된다는 조언도 많지만 또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는 동료가 있으면 그냥 낙으로만놀러 다닐 사람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인데 체력이 달려 그런가 사람 만나면 그렇게 멘탈이 털리고 오랜 시간 다른 사람이랑 있는 것이 예전처럼 편하질 않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좋지만 남편의 영향인가 나도 혼자 있는 것이 점점 편하고 즐거워진다. 혼자 있는 것이 즐거워진 것은 좋은데 남편과 함께 홈오피스를 할 때 신경 쓰이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기에 우리 집 아저씨는 괴로워도 출근을 좀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내 말이 들리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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