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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v Aug 14. 2020

우리 회사는 체계가 없어요

그럼 이 글을 읽어보세요

조직 체계를 잡고 싶다는

스타트업들의 헬프 요청을 많이 받는다.

"우리 회사는 체계가 없어요...ㅠㅠ"

 인원이 늘어나는 스타트업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체계를 바로잡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정작 '조직 체계'가 대체 무엇인지, 체계를 잡는다고 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장 생활 경험이 적은 주니어도 그렇고, 심지어 대기업을 경험한 경력직 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에 오면 대부분 사람이 체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잘 모른다.

 시중에 조직의 구조나 좋은 조직 문화 사례를 찾아봐도 여전히 어렵다. 흔히 좋은 조직 문화라고 하면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법이라든지, 1억짜리 스톡옵션을 준다든지, 전사 비전 세미나를 한다든지, 수평적인 호칭 같은 단편적인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고 전문 서적을 읽자니 대기업에나 적용할 법한 원론적인 얘기나 이론만 나온다.

 답답한 CEO들이 주변 스타트업에 물어봐도 조직 체계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슬랙이 편하더라', '요즘은 노션이 대세다', '우리는 OKR을 도입했다'는 식의 유행만 접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 조직에 맞는 체계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 CEO나 관리자들 입장에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나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조직 체계를 잡기 위해 인하우스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800명 넘도록 스타트업/창업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게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좋은 기업 출신이라도 스타트업에서 직접 조직 체계를 만드는 데에는 모두가 서툴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많은 회사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나는 그게 너무 아깝다. 그래서 정리를 좀 해보려고 한다.




"하... 대표님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책 읽으셨는데요."

 초기 스타트업이 체계를 잡으려다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있어 보이는 거 벤치마킹하는 일’이다. 어디 스타트업은 Agile뭐를 한다더라, 노션 안 쓰는 회사가 없다더라, OKR 우리도 해보자 라는 식으로 시작한다. 조직에 맞지 않는 솔루션을 도입한 대가는 실패로 끝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개념과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창업 직후에는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 이때는 협업을 잘하기 위한 업무 효율이 중요하다.

인원이 늘고,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에 ‘조직 문화’가 덧붙는다.


조직 체계와 조직 문화, 둘 다 본질은 협업에서 출발한다.

Task를 여러 사람이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체계와 문화다.


 그러니까, Task에 관한 체계도 제대로 안 잡고서 문화 행사만 주최하거나, 핵심 가치 선언문에만 공을 들이고 있으면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다.


 문화보다 먼저 셋팅해야 할 조직의 체계는 다음과 같다. 여러 사람이 Task를 어떻게 다룰지 공통 규칙을 먼저 정한다. 조직 규모와 단계에 따라 아래 요소들이 순차적으로 셋팅된다.


[ Task 협업 체계 - 정리 ]

1) Task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 업무 요청
 - 업무 커뮤니케이션 히스토리

2) Task에 관한 자료
 - 아카이브
 - 탐색/공유

3) Task 관리
 - 목표 관리
 - 업무 보고/공유
 - 팀 체제
 - 퀄리티 관리
 - 피드백

 그 다음에야 5가지 조직 체계가 고도화된다.

 - 채용, 평가/보상, 팀 체제, 의사소통 구조, 의사결정


 앞선 Task 협업 체계가 하나하나가 제대로 셋팅되지 않은 채로, 있어 보이는 외부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필요하지 않은 솔루션 때문에 오히려 불편해질 뿐이다.


 지금 여러분의 회사는 각각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리고 각각에서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부터 해결하는 게 1순위다. 이상한 복지 문화 말고 Task에 관한 협업 체계부터 해결하라.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풀어보면 이렇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며 다들 아래와 같은 문제를 겪는다.


1) Task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 업무 요청
   : 팀원이 5명 이상 늘어나면 온라인 업무 툴을 활용해야 편하다. (카톡/슬랙/잔디 등 활용)

 - 업무 커뮤니케이션 히스토리
   : 팀원이 10명 이상 늘어나면 대화 기록이 휘발되므로 Task의 진행 상황과 히스토리를 아카이브할 수 있는 툴을 활용해야 한다. (노션/아지트 등 활용)

2) Task에 관한 자료

 - 아카이브
   : 기업 연차가 늘어날수록 회사 자료를 잘 아카이브 해야 한다. 퇴사자가 늘어나 손실되는 자료가 생기고, 구성원끼리 서로 자료를 주고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글 드라이브, 드랍박스 등 활용)

 - 탐색/공유
   : 팀원이 10명 이상 늘어나면 자료 교환이 빈번해지므로,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자료 관리 체계가 필요해진다. (폴더링, 파일명 규칙 등)

3) Task 관리

 - 목표 관리
   : 팀원이 15명 이상 늘어나면 팀이 분화되고 각 팀마다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앙에서 목표를 관리하는 게 중요해진다. (OKR, 대시보드, 간트차트 등 활용)

 - 업무 보고/공유
   : 팀원이 10명 이상 늘어나면 업무의 총량 자체가 늘어나서 현황 파악이 힘들어지므로 업무 보고 양식이나 중간 관리자 체제 등이 필요하다. (업무 보고 양식, 주간 회의 등)

 - 팀 체제
   : 팀원이 30명 이상 늘어나면 팀 간에 갈등하는 사일로 현상이 발생하기 쉬우니, 효과적인 팀 체제 개편을 고려해볼 수 있다. 긴밀히 협업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분화함. (Agile조직, Matrix 구조 등)

 - 퀄리티 관리
   : 인원이 늘어나면 각 구성원의 업무 퀄리티가 달라지므로, 수준을 관리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하다. (업무 매뉴얼, 업무 수시/중간보고 절차 등)

 - 피드백
   : 팀원이 15명 이상 늘어나면 주먹구구식, 도제식 피드백이 어려워지므로 건강한 피드백 방식을 찾아야 한다. (피드백 원칙, 커뮤니케이션 원칙 등)


효율적으로 일할  있는 체계가 먼저다.

 30명 이내의 초기 스타트업이 조직 체계를 갖추고 싶다면, 위 협업 체계들 먼저 자기 단계에 맞게 셋팅해야 한다. 30명 이상의 큰 조직이라고 다른 건 아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일을 잘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좋은 조직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반드시 Task에 관한 효율적인 협업 체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체계와 문화는 조직이 성장하면 두 가지 기능으로 분화한다. 처음에는 Task에 관한 '업무 효율'만 신경 써도 괜찮지만, 조직이 성장 궤도에 오르고 나면 '조직 건전성'도 챙겨야 한다.

 1) 업무 효율 : 조직/팀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든다.
 2) 조직 건전성 : 갈등을 건전하게 풀어내고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만든다.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체계를 잡을 때 방향을 잘못 잡는 이유는,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 조직 문제를 '조직 건전성' 콘텐츠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그냥 조직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만드는 데에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게 조직 문화라는 것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겉보기에는 그럴 수 있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조직 문화'라는 영역이 알록달록하고 신나는 문화 행사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다. 문화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 탓도 있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역이니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는 탓도 있으리라. 그래서 체계를 구조화해야 함에도 문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구성원이 회사의 방향성이나 전사적 목표를 잘 모르고 있다는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CEO는 전사 직원들이 회사의 목표를 잘 알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Task나 Project를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한 마디로 '목표 중심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문화'의 영역으로 먼저 접근하면 추상되고 허황된 솔루션이 나온다. 월이나 주 단위로 전사 직원이 모여서 비전 세미나 발표를 한다든지, 개인의 성장 목표를 체크하고 관리해준다든지 등의 문화적 해법이 나오곤 한다. 이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두 번 해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Task에 대한 협업 체계를 건드리지 않고, 실무와 괴리된 부가행사만 늘렸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제시했던 솔루션은 이런 것들이 있다.

(적절히 스킵하며 읽으세요)

1) 기업의 노션 Main Page에 조직의 6개월 내 목표와 마일스톤 3가지와 그 주의 달성 현황을 적어둔다. 노션을 사용하는 모든 구성원이 볼 수밖에 없는 곳에 공시한다.

 - 각 목표를 클릭하면 세부 KPI 지표를 확인할 수 있게 대시보드와 연동시킨다.

 - 이 대시보드(dashboard)는 꼭 필요한 정보만,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최신 버전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2) 매주 주간 회의 때 위, 회사의 6개월 목표를 점검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Task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 각 팀의 업무 브리핑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회사의 목표와 달성 현황, 진행 현황을 먼저 이야기한다.

 - 점검한다는 건 그냥 눈으로 읽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목소리를 내어 말을 꺼내는 걸 말한다.


3) 중간 관리자의 팀 관리 방식을 가이드한다.

 - 각 팀의 관리자가 프로젝트 전체의 맥락과 진행 상황을 요약하여 팀원들에게 설명하도록 가이드한다. (매주)


4) 권한 위임을 강화하기 위해 업무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원칙을 만들고, 수시 보고를 의무화한다.

 - 회사 목표에 맞게 개인을 Align시키는 것은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스타트업 실무자들이 회사 방향에 맞게 일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적정 선의 권한을 보장해줘야 한다.

 - 상사가 권한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운다. 주로 실무자가 무시받는 상황은 업무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받을 때, 상사 마음대로 결과물을 번복할 때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피드백 원칙을 만들어 관리자급 또한 원칙에 맞게 피드백하도록 정례화해야 하고, 수시 보고를 의무화하여 업무 결과물의 수준을 관리자가 수시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외에도 조직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모색해볼 수 있겠다. 중점을 두는 부분은 실제 업무 현장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당장 회사의 협업 툴에 접속했을 때 회사 목표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매주 회의 때마다 이야기하도록, 실무자가 수시로 회사 KPI를 업데이트하도록, 중간 관리자가 당장 행동을 고쳐먹도록, 당장 업무 결과물을 팀장에게 보고할 때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모두 일하는 상황에 적용해야 하는 원칙들이다. 이것이 체계다.



마무리하며-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체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체계를 잡기 위해 도움받을 수 있는 콘텐츠는 적다. 시중의 콘텐츠로는 체계라는 게 무엇인지도 이해하기 힘들고, 있어 보이는 문화적 요소들만 벤치마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사람이 Task를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그때 체계가 필요해진다. Task에 적용되는 체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문화적 요소에만 힘을 쓰면 실제로 작동하질 않는다.


 큰 조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훌쩍 성장한 스타트업에서는 People팀, People&Culture팀, HRD, 조직 문화 등 담당자를 뽑을 때 굉장히 보수적인 모습들을 보인다. 3~5년 차 이상의 대기업 출신 경력직만 뽑거나, 긍정적이고 친화력 좋은 CS 베이스의 밝은 사람을 뽑는 식이다. 전자의 경우 큰 기업에서 조직 관리를 경험한 사람이니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조직 문화를 단순히 직원 복지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일반 기업과 다르게 빠른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다. 왜 이름이 스타트업인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goodgdg/31)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없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고, 때문에 시장 반응에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면 응당 조직 내부의 체계와 문화 또한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혁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인사는 안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스타트업의 조직 체계와 문화는 '정해진 룰을 따르는 것'보다 우리 조직 상황에 맞는 '룰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영역이다. 국내외 Best Practice 사례들을 리서치하고 벤치마킹해서 그들의 '솔루션'만 베껴오는 게 통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솔루션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문제'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게 스타트업에 더 알맞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사실 체계가 아닌 다른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조직의 체계나 문화, 시너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분야 중 하나다. 각자 자기가 맡은 업무를 해내기에 바빠서, 다른 사람과 협업할 때 어떤 시너지가 날 수 있는지, 전사적인 차원에서 조직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까지는 생각하질 못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본주의라든지 사회 규범의 역할 같은 걸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일만 전담하는 담당자가 필요하다.




 나는 스타트업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삶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탁월한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든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기존 시장을 혁신하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조직 문화라는 영역에도 도전정신이 생긴다. 앞으로 더 재밌는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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