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적힌 대로만 따라 하면 누구나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도발적이지만 이러지 않으면 글을 읽지도 않고 계속 엉망진창일 테니 과장 보태서 얘기하겠다. 평범하느니 욕먹는 게 낫다.
이전에 회의 방법론에 관한 글은 여러 번 썼다. 하지만 원리만 읽어서는 실천을 안 하고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시간 순으로 따라하기 쉽게 정리하려 한다.
아래 가이드에서 단 하나라도 빼놓으면 회의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서 빼먹지 말고 정해진 대로만 해도 절반은 간다.
회의를 준비하려면 할 게 많다. 회의를 진행할 때도 누군가 '사회자'역할을 맡아야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0명도 2명도 아니고 무조건 단 1명의 책임자를 정한다. 지금부터 적는 모든 과업은 회의 책임자가 할 일들이다.
Bad) "A라는 안건은 다음 주쯤에 회의 잡고 다시 한번 논의해보자"
Good) "A라는 안건은 OOO님이 다음 주쯤에 일정 한 번 잡아주세요."
무엇을 의사 결정해야 하는지 드러나도록 안건을 정한다. 회의라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고, 명확한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이 회의를 통해 무엇이 결정 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한다.
Bad) 신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Good) 신사업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회의, 신사업 방향성 확정하기(헬스케어vs의료기기) 등
정확히 어떤 이해관계자가 참석해야 하는지 미리 정하고, 누구누구 참석하기로 했는지 해당 참석자들한테 미리 공유한다. 이는 꼭 참석해야 할 사람을 빠트리는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Bad) "이 회의에 OOO님도 참석해야 할 거 같은데? 지금 들어오라고 하세요"
→ 당사자인 OOO는 다른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회의에 불려 가고, 다른 업무 일정이 꼬인다. 회의 안건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리 준비하지도 않은 채로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각 회의 참석자들과 이야기하여 회의를 정확히 몇 날 몇 시에 할지 정한다.
Bad) "내일 오전에 회의하죠" → 정확히 몇 시에 할지 정하지 않음.
Bad) "내일 OO회의 끝나고 바로 이야기하죠" → 회의 시작 시간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선 회의가 늘어질 수도 있음. 또한 회의 시작 시간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종료 시간도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다른 업무 일정을 조율하기 힘듦. 정확히 몇 시에 시작할지 정해야 함.
해당 일자에 회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미리 알아본다. 회의 장소를 확정하기 전까지는 회의 일자를 확정하지 않는다. 해당 날짜에 회의실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Bad) 회의 시작 5분 전에 부랴부랴 비어있는 회의실을 찾으러 돌아다녔으나, 빈 곳이 없어서 모두 10분 간 배회함. 매번 이런 식으로 시간 낭비함.
정확히 언제, 몇 시에 회의할지 정하고 회사 공용 캘린더에 등록한다. 캘린더든 뭐든 전사 직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회의 일정을 적어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회의 참석자가 나중에 시간을 잘못 알아도 딴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 둘째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인원들이 해당 참석자들의 업무 일정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그 시간을 피해서 다른 일정을 잡을 수 있으니까.
Bad) 회의 일정을 캘린더에 등록하지 않음 → "OO님, 우리 회의 몇 시에 하기로 했더라?", "00일 오전에 다들 일정 비었네. 이때 워크샵 하자"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미리 회의를 준비해와야 한다. 아무 준비도 안 하고 회의시간에 부랴부랴 참석해서 고민의 깊이가 얕은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건 민폐다. 회의 책임자가 미리 공지해야 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회의 배경&맥락 (선택) : 이 회의가 왜 필요한지, 어떤 맥락이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참석자들이 회의 목적에 맞게 이것저것 준비해올 수 있다.
회의 일정 : 00월 00일 0요일 00:00~00:00 (00분) → 예상 소요 시간까지 적어야 회의 참석자들이 다른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
회의 장소 : 어느 회의실인지.
회의 안건 : 대충 적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인지 적기.
회의 히스토리 (선택) : 해당 회의 안건에 대해서 이전에 논의했던 히스토리가 있는지 공유하기. 이전 회의록이라든지, 관련된 문서라든지 등등
회의 관련 자료 (선택) : 추가로 읽어와야 할, 참고하면 좋을 자료 등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기.
만약 회의 참석자들이 반드시 준비해와야 할 게 있다면, 위 회의 공지사항에 함께 적어둔다.
Good) Jason : 제품 생산 일정 정리하여 미리 공유하기 (~0월 0일 00시)
큐시트라 함은 무엇을 언제 할지 적어놓은 진행표다. 회의 책임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회의 식순을 미리 기획해야 한다. 각각의 시간이 몇 분이 걸릴지, 어떤 안건을 몇 분 동안 마무리지어야 하는지 등을 미리 기획한다. 따로 문서를 만들 거는 없고 그냥 머리로 시간 분배를 잘해보시라.
회의 하루 전이나, 시작 1~3시간 전에는 참석자들에게 회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분명히 까먹고 다른 일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일정이 갑자기 꼬여서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공용 캘린더에 일정을 넣어두었다고 해서 참석자들이 모두 회의 시간을 제대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중간점검차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단 1명의 회의 책임자가 책임지고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 과업이다.
회의 시작 10분 전에는 미리 가서 회의실을 확인한다. 앞선 예약자가 있을 수도 있고, 회의 때 사용할 모니터나 화이트보드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점검한다.
참석자들이 다 모였으면 회의를 시작한다. 다짜고짜 안건 A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회의를 왜 소집하게 되었는지 배경과 맥락부터 다시 설명한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생략하지 말고 제발 다시 설명한다. 이는 회의의 목표와 결과물을 명확히 상기하기 위함이다. 다른 헛소리하지 말고 이 회의 목적에 맞는 결과물만 빠르게 논의하자는 합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짜고짜 안건 A부터 곧바로 논의를 시작해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 회의 시간에 몇 개의 안건이 있는지, 우리가 정해진 시간 안에 무슨무슨 안건을 다루어야 하는지 먼저 공표한다.
회의를 몇 분 안에 끝낼 것인지 공표한다. 이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다. 회의 책임자는 책임지고 이 시간 안에 위 안건들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종료시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지키면 좋지만, 필요하다면 회의가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만 회의가 마냥 길어지는 사람들은 종료시간 자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걸 명심한다.
회의 성격에 따라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는 '다른 사람의 황당한 의견일지라도 비난하지 않기'와 같은 주의사항을 정할 수 있겠다. 이렇게 미리 주의사항을 얘기하지 않으면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회의록 작성자도 정한다. 이때, 회의록을 똥 닦은 휴지쯤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뭔가 정리한듯한 기분 내려고 회의록을 적은 다음에, 다시는 거들떠도 안 볼 바에는 안 적는 게 낫다.
회의록을 적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내용을 Follow-up하기 위함.
해당 안건에 대한 히스토리를 나중에 다시 읽어보기 위함.
회의에서 결정 난 사항을 참석자들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명확히 합의하기 위함.
회의가 끝나고 난 뒤에 해야 할 Aciton Item을 도출하고 공유하기 위함.
이렇게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회의록을 자기만 이해할 수 있게 적는 사람이라든지, 마냥 주니어 초년생에게 맡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뒤에서 보겠지만, 회의록은 회의를 끝낼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의가 시작되면 책임자는 사회를 본다. 사회자는 참석자들의 발언권이 안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하고, 논쟁의 논점을 밝혀 합의를 유도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회의 책임자도 적극적으로 논의에 뛰어들어야 하더라도, 자신이 사회자 역할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 사회자로서 해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회의 책임자는 항상 남은 시간을 체크한다. 목표로 했던 종료시간 내에 회의를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리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안건에 대한 시간을 줄이고, 현재 진행 중인 논의를 더 이어갈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시간을 재분배하도록 한다. 가장 나쁜 건 회의 참석자들 중 누구도 시계를 보지 않는 것이다.
회의 책임자는 항상 '논점'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논쟁이 오가다 보면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Ex) 어플리케이션(앱) 내의 버튼 삭제에 관한 논의
A : "앱에서 이 버튼은 없애는 게 나을 것 같아요"
B : "그럴 거면 메뉴 기능에서 OO를 추가하는 게 어때요?"
A : "지금 메뉴 기능에는 너무 많은 게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메뉴를 좀 간소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B : "메뉴에서 이거랑, 저거는 꼭 들어가야 하는데. 뺀다면 뭘 빼는 게 좋을까요?"
→ '버튼'에 대한 논의가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채로 '메뉴 기능'으로 논점이 옮겨갔다. 이럴 때는 메뉴와 관련된 논의를 중단시키고, 다시 해당 안건으로 돌아와야 한다.
회의 목적은 다양하다.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회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회의, 의사결정 내리는 회의 등이 있다. 그런데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논의가 섞여서, 원래 하려던 걸 못하고 엉뚱한 데에 시간을 버리게 된다.
Ex) 마케팅 OO프로모션을 진행할지 말지에 대한 기획 회의
A : "이러이러한 이유로 000만 원 예산으로 SNS마케팅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B : "그 돈이면 차라리 인플루언서 마케팅하는 게 낫지 않아요? 요즘에 유튜버들이랑 많이 하잖아요"
A : "그것도 좋죠. 얼마 전에 보니까 OOO유튜버랑 어디랑 콜라보하는데, 영상 한 번 보실래요? 되게 재밌어요"
B : "이런 건 어때요? 숏컷 영상도 요즘 유행하는데, 컨셉을 이러이런 식으로 잡아서 우리도 영상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로, 각자 신나서 아이디어만 얘기하다가 몇십 분 지난 뒤에 후회하게 된다. 회의 책임자가 사회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회의 때마다 이런 식이다.
모든 회의에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회의록만 어디에 버려두고 끝이 아니라, 어떠한 사항이 결정되고, 어떠한 과업이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의 책임자는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에 이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의사 결정된 사항', 'Action Item'을 정리해야 한다.
회의 책임자가 이를 놓칠 수 있으니 회의록 작성자가 보조하도록 한다.
회의 책임자는 참석자들의 대화 방식을 관리한다. 회의에서 의견이 충돌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충돌해야 한다. 회의에서 마냥 싸우기만 하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하게 충돌'할 줄 모르는 것뿐이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기분 나쁘게 이야기하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얘기하는 등의 발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잘 중재하자.
다만, 공개된 자리에서 강하게 주의를 줄 경우 대상자의 자존감이 상할 수도 있다. 조직 전체의 분위기와 팀워크를 해치는 발화에 대해서만 즉시 주의를 주되, 대상자가 개인적으로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대화가 마무리되면, 그 회의에서 정리된 내용을 복기하면서 참석자 모두와 합의한다. 이때 회의록을 쓰는 사람이 잘 정리했다면, 회의록을 보면서 복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Aciton Item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곧바로 무언가 추진되도록, Action Item을 정리하도록 한다. 이때는 누가, 무슨 업무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한다.
Bad) "다음 회의 때까지 경쟁사 자료를 좀 찾아보는 걸로 하죠"
Good) "다음 회의 때까지 OO님이 경쟁사 자료들 0개 정도 찾아봐줄래요? 회의가 0일 00시니까 그 전날 00시까지 공유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회의가 모두 종료되어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면, 회의 책임자는 그날의 회의 결과를 정리하여 다시 공유한다. 다음과 같은 항목을 포함한다.
회의 이름
회의 일시
회의 장소
회의 참석자
회의 안건
Action Item :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회의록 파일(링크)
회의 내용 요약 (선택)
회의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회의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회의 방법론을 외부에서 교육 몇 번 받았거나, 컨설팅 몇 번 받아놓고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디자인 씽킹이나 퍼실리테이션 방법론 몇 개 시도해보고는 다 해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배운 회의 방식이 정석이고 완벽한 줄 아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일의 가장 작은 단위는 과업(Task)이다. 작은 과업(Task)이 모여서 프로젝트가 된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려면 반드시 회의를 해야 한다. 즉, 회의도 하나의 과업 중 하나다.
과업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과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Task의 KARD라고 정리했다.
KPI : 구체적인 과업의 결과물
Action Item : 진행해야 하는 세부 과제
R&R : 담당자(역할과 책임)
Due date : 납기(마감기한)
모든 Task에는 담당자가 있듯이, 회의도 책임지고 회의를 추진시킬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회의로 인해 만들어낼 구체적인 결과물, 안건이 명확해야 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과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Action Item이 명확하게 도출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납기가 명확해야 해당 날짜까지 제대로 추진된다.
본문에서 회의 책임자가 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도 적어놨다. 그 모든 것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로 하는 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이다. 단순한 회의 방법론이 아니라 모든 과업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책임자를 정하고, 업무 계획을 컨펌받아 중간 공유하며, 일의 배경과 맥락에 맞게 일하고, 시간 내에 업무 리소스를 배분하며, 히스토리를 기록하고, Action Item을 도출해 일을 추진시킨다. 회의 방법론이 업무 방법론과 다를 게 무엇인가??
글로 쓰니까 많아 보이지만, 만약 사수로 붙어서 알려줄 수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내용이다.
어디서 이상한 교육 듣고 와서 포스트잇 붙이는 워크샵 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회의 한 번 참관해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OJT방식의 교육을 열어보고 싶다. 글로 장황하게 쓰는 것보다 교재로 정리하여 실습 한 번 하는 게 나을 텐데!
※ 이전에 썼던, 아래 두 아티클은 시간 나면 나중에 읽어보시길 바란다.
- 회의록 양식 : https://brunch.co.kr/@goodgdg/8
- 스타트업 회의 방법론 (원칙) : https://brunch.co.kr/@goodgdg/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