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처음 입사하면 모든 게 낯설고 정신이 없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워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것도 많다.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를 보낸다. 직장 동료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어려워 진 빠진다. 집에 돌아오고 나면 정시에 퇴근했어도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집에 와서 씻고 멍하니 SNS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금방 잘 시간이 됐다.
시간은 묘하게 흐른다. 입사하고 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지 놀란다. 매일 하루하루는 시간이 잘 안 가는데, 지나고 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3~4개월쯤 지나고 나면 오히려 반대로 놀란다. 입사한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몇 개월밖에 안 됐냐면서 말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절대 멈추지 않고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한없이 지나 보낸다.
짬이 좀 차면 회사 생활에서 불만이 싹튼다. 번아웃(burn-out)도 온다. 대표도 마음에 안 들고 연봉은 적고 일은 많고 다른 직원은 짜증 난다.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고 직장 생활도 적응이 되니까 회사의 문제점들이 눈에 명확히 들어온다. 그래서 다른 회사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는다.
사회초년생이 겪는 시행착오가 있다. 그중에는 사회초년생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문제인 것도 많다. 회사 자체가 월급이 너무 적다든지, 사내 정치가 있다든지, 야근을 권장하는 문화라든지 하는 것들은 사회초년생이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이 겪을 필요가 없었던 시행착오도 분명히 있다. 이를 테면 일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이메일 쓰는 데에만 한 시간을 쓴다거나, 시키는 일만 하느라 자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른다거나 등등이 있다. 결과적으로 동기 부여가 떨어지고 회사는 전쟁터 같아진다.
만약 간단한 업무 방법론만 알았더라면 해결되었을 문제도 많다. 직장에 대해 조금만 다르게 생각했어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문제도 있다. 누군가는 똑같이 일해도 그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으며 회사를 다닌다. 반면 누구는 업무 만족도도 떨어지고 매일 너무 힘들어하고 끔찍하게 회사를 다닌다. 회사의 문제라면 그건 해결할 수 없겠지만, 나 개인의 문제라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회초년생의 한계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겪는 문제가 회사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문제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다. 처음 겪는 터라 비교할 수 있는 경험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초년생들은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마치 악어떼가 숨어 있는 강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물소 떼처럼 말이다. 앞에서 물을 마시던 물소가 물려 죽어도, 뒤에 있던 물소는 그걸 보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회에서 같은 시행착오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내 글은 대부분 사회초년생 타겟이다. 내가 겪었던 문제를 누군가 겪지 않기를 바라며 적는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 딱히 업무 방법론을 찾아보거나, 이직을 미리 준비하거나, 직장 생활에 대한 글을 찾아보지 않는다. 당장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를 잘 적응하고 처리해내기 위해서 업무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힘들어한다.
내가 그랬다. 책이나 이론들은 많다. 하지만 일 잘하는 방법 그런 글들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장 내 업무에서 발생한 이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근을 더 할 뿐이었다. 힘들 때는 또래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우리끼리 문제를 논하고, 토로하고, 같이 힘들어했다.
어떤 경험을 처음 하는 초심자는 늘 그렇다. 초심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안을 판단할 기준이 없다.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의 역할은 자신이 먼저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시도했는지 공유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초심자는 멘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아주 지엽적이고 실용적인 기술과 이론을 원한다. 예를 들어 나는 수백 명의 예비 창업가들을 코칭했었다. 그들 대부분은 특허나 법인 설립, 사업계획서 작성 같은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도움만을 원했다. SNS 마케팅 강의나 데이터 분석 교육을 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창업가 100명 중 90명은 고객을 만나본 적도 없다. 고객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어서, 자기가 누구한테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자기 머릿속에서만 대박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그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게 특허나 법인 설립인가? 특허 내면 뭐하나, 아무도 사지 않는 아이템을 만들 뿐이다. 이를 '똥에 금칠한다'고들 한다.
사회초년생도 마찬가지다. 자신한테 실제로 필요한 것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실제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내가 대박 성공한 창업가가 아님에도 왜 예비 창업가들을 코칭했는가?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초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 시행착오만 바로잡아 줘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도 없으면서 홈페이지 만드는 데에 수천 만원 씩 정부 지원금을 쏟아붓는 행위를 수천 명이 똑같이 저지른다. 이는 비단 창업의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모든 초심자들이 겪는 문제다.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선제적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당시에는 모르기 때문에, 선 경험자가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전해줘야 한다. '내가 똑같이 경험했는데, 이 경우엔 이런이런 게 문제였다. 지금 당신이 겪는 문제도 사실은 이런이런 것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 이렇게 했다'라고 먼저 가서 얘기해줘야 한다. 초심자가 조언을 원하지 않더라도 먼저 가서 얘기해주지 않으면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그런데 꼰대라는 말은 어떤가? 모든 선제적 도움을 차단한다. 이 사회를 좀먹는 수많은 것들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꼰대'와 '네가 뭔데'다.
세상에 꼰대는 많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꼰대라는 말 때문에 꼰대가 아님에도 다른 사람에게 조언해줬어야 하는데 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이 수백 배는 더 많다. 비상식적이고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꼰대들보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사려 깊은 일반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꼰대라는 말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꼰대라고 여겨질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서양권 위대한 선진국들에서 말하는 '개인주의'인가? 아니다. 이런 식이면 그냥 사회를 좀먹는 문화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조언하고 도와주려고 할 때 우리를 가로막는 두 번째 표현은 '네가 뭔데'다. 제삼자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스스로를 자기 검열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괜히 나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10명이 모여 있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네가 뭔데'라는 말과 행동을 은연 중에 비치면 나머지 9명이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게 된다. '내가 뭐라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차단된다.
내가 생각할 때 사회초년생에게 필요한 건 업무 방법론과 직업윤리다. 업무 방법론은 일을 잘하기 위한 기술인데, 이제 막 회사에 들어간 초년생은 그냥 회사가 기존에 하던 방식에 따르게 된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직무 교육, 신입사원 교육을 며칠에 걸쳐서 자세하게 가르쳐줘도 부족한데, 심지어 사수도 없이 일하는 초년생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들이 업무 방법론만 잘 만들어 나가도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직업윤리는 직장 생활에 임하는 우리 마음가짐을 기반부터 흔들어놓을 수 있다. 직장 생활을 글로만 배운 우리는 학생 시절에 노동권에 대해서만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부조리한 회사의 임금 체계나 야근 등에 맞서 싸우는 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직장이란 무엇인가? 돈을 번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내가 맡은 이 직무, 직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회사가 돈을 번다는 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개념과 철학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고민했냐에 따라서 직장이나 업무 만족도가 백팔십도 달라진다. 똑같은 환경에서 누구는 죽고 싶어 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누구는 그 와중에서도 정신 건강을 챙기면서 취할 것만 취하고 포기할 건 포기해서 더 좋은 환경으로 넘어간다. 직업윤리 없이는 업무 방법론을 아무리 잘 갖춰도 개인의 마음가짐이 달라지진 않는다.
직업윤리 말이 나왔으니 몇 가지 얘기해본다. 나는 처음에 직장 생활이 그냥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으니까 원하는 직무를 선택했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월급도 적은데 야근하고, 회사에 체계도 없고, 직장 동료도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고 이런 수없이 많은 직장 생활의 문제들에서 스트레스받았다.
그런데 마음이 바뀐 건 고객들을 직접 만나면서부터다. 내가 맡은 업무가 어떻게 결과물이 되어서 고객들에게 전달되는가? 고객들은 내가 기여한 제품/서비스를 받고 어떤 만족감을 얻는가? 그걸 눈으로 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직장이라는 곳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과장 좀 보태 말하자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직원이 함께 모여서 힘을 합치는 곳이다.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일반적인 비즈니스들은 모두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행위다. 비즈니스라는 것 자체가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글로만 읽는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기여한 업무 결과물이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체감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그냥 돈 벌려고 회사 다니는 사람은 매일 불만이 가득하다. 돈 벌려고 꾹 참고 그냥 다닌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해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한다.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도 딱히 관심이 없다. 그냥 나한테 주어진 실무만 쳐내기 급급하다. 누구의 만족감이 더 높겠는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스스로 가치 절하하는 사람이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인생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행복한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의 가치를 정의 내리고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사회초년생인가? 당신이 겪는 문제 중 수많은 것들은 애초에 겪을 필요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 눈 앞에 흙탕물 밖에 보이지 않아서 열심히 질퍽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옆에 깨끗이 포장된 도로가 있는 격이다. 굳이 겪을 필요도 없었고, 너무 많은 시간과 심력을 잡아먹는 선택지로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1년 동안 힘들어했는데 알고 보니 간단한 스킬셋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면, 1년의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사회초년생 시절을 지나 보낸 직장인인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뭐 대단하다고'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삶만 산다.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과 분야의 99명이 단 1명의 성공 스토리만 읽는다. 99가지 각자 다른 길은 다 어디로 가는가? 공유되지 않는 경험과 노하우는 모두 사장되고 휘발된다.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실리콘밸리 기업 스토리나 수백 억 투자받은 유명 기업들의 스토리인가? 30명짜리 조직에 왜 3,000명짜리 기업의 조직 문화를 벤치마킹하는가?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뭐 대단하다고'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요한 건 선제적 도움이다. 내가 먼저 나의 작은 경험과 생각들을 풀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흘러가는 대로 똑같이 흘러간다. 누군가는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고통과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똑같이 겪고 있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누군가는 쓸 데 없는 시행착오로 인해 퇴사한다. 이런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CEO가 알아서 하겠지, 그건 경영진이 할 일이지’라는 생각은 ‘그건 국회의원이 할 일이지’라는 마인드와 같다.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모든 정치를 국회의원에게만 맡겼으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 발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꼰대' 문화와 '네가 뭔데, 내가 뭐라고' 문화를 극복하면 사회는 더 발전한다. 심지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말 한마디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조금만 용기 내서 말 한마디를 시작하는 것으로 사회가 더 이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니, 이렇게 가성비 좋은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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